북경( 北京 Beijing) 309

북경, 이화원의 불향각(佛香閣)과 17공교(孔橋)

만수산 정상에서 맞은편 산 위의 탑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중국 여행에서 보면 산세가 가파르거나 높은 곳에는 정자 또은 탑을 세워놓는 것을 많이 봅니다 만수산을 내려가는 곳에 문이 있었습니다 만수산 내리막 길에 돌을 가지고 모자이크로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불향각 뒷 편에 있는 사찰 입니다 만수산을 내려가던 사람들이 사찰 안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불향각의 8각 지붕이 보였습니다 곤명호에는 큰 유람선과 작은 놀이 보트를 타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불향각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아래로 내려가서 긴 회랑 쪽으로 걸어 갔습니다 팁 이화원은 불향각(佛香閣),배운전(排雲殿),장랑(長廊),석방(石舫),17공교(孔橋)와 남도(南島),희대(戱臺),문창원(文昌院),소주가(蘇州街)와 라마 사찰,동우(銅..

북경, 이화원의 서제 경작도와 경잠도

이 주변은 서제(西堤)입니다. 아주 오래 된 능수버들 19 구루가 군락을 이루며 수로를 따라서 심어져 있는 풍광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서제의 오래된 뽕나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석방을 지나 북문 나가는 쪽의 옥대교(玉帶橋)에서 서편으로 걸어가면 넓은 정원 같은 곳이 나오는데 여기에 경직도와 경작비가 있습니다 경작도(耕作圖)와 경작비(耕作碑) 중국 고대의 제왕이나 관부에서는 농민들에게 권농을 위하여 경작(耕作)과 잠직(蠶織) 광경을 돌에 음각으로 새겨서 만들었습니다. 청 건륭 34년(1769년)에 경작도 21폿, 점직도 24폭 그리고 어제(御題)를 포함하여 모두 48폭이 전시되고 있는데 그림들이 매우 정교하고 글씨도 물 흐르듯 수려 했습니다. 이 경직도 전시장 앞에서 두 남녀가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북경, 이화원 곤명호의 석방(石舫)

길이 36m의 대리석으로 만든 반석 같은 석방 입니다 석방(石舫이 원 이름이며 淸晏舫(청안방)이라고도 부름)은 청 건륭20년(1755년)에 만들었으나 영국,프랑스의 연합군 침공 때 소실되었는데 광서제 때인 1893년에 처음의 중국식 선창이 아닌 서양식의 선창을 가진 유람선을 본 따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배 양 편에는 수레바퀴 모양이 하나씩 있는 것입니다. 이 석방에는 상하에 큰 거울을 비치하였는데, 이것은 곤명호의 파도치는 물결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큰 파도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반석(磐石)처럼 청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다는 것을 상징해서라고 합니다 서태후가 곤명호 석방에 올라 달 구경을 했다고 해서 유명한데, 이화원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구경 못 한 분들이 있어서 여기에 사진..

북경 이화원의 북문에서 만수산 정상에 오르고

이 패루를 지나면 라마 사찰이 나오는데, 계속 경사 길을 오르면 만수산 정상에 이르게 됩니다 이 라마 사찰은 1860년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국 침공 때 소실되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1980년 원상대로 복원한 것 입니다 관광객이 이곳은 소주가 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이화원의 입장료에 이곳 사찰 관람에는 소주가나 불향각 입장처럼 별도의 추가 요금은 받지 않습니다 티벹식의 돌탑이랑 주변 조형물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은 청화대학,북경대학,원명원,식물원,와불사 등이 있는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만수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불향각(佛香閣) 건물 입니다 불향각 옆으로는 곤명호가 일부 보입니다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 입니다 아래엔 긴 장랑(長廊)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팁 소주가를 구경하..

북경의 이화원 소주가를 둘러 보고

팁 매매는 한자로 쓸 때 우리나라와 순서가 다릅니다. 즉 우리는 賣買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買賣를 씁니다 즉 우리는 나의 물건을 시장에 나가서 팔고 나서 필요한 물건을 사지만, 중국인들은 남의 물건을 사서 이윤을 붙여 파는 것을 먼저 생각하니 장사꾼의 기질이 여기서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시기가 추석 무렵이어서 中秋月餠 간판을 걸고 월병을 파는 집도 보였습니다 배에 사람들이 자리에 다 차게 되면 수로를 따라서 배가 노를 저어 천천히 출발을 합니다 이 수로 주변은 관광객이 적습니다. 나무들이 울창하여 항주의 서호나 양주의 수서호 등 다른 관광지의 뱃놀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듭니다 소주가의 가게를 두 발로 걸으면서 들여다 보는 것과 이처럼 배를 타고 이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이 아취형의 돌다리를..

북경 이화원( 頤和園 이허위엔)

소주가(蘇州街)의 한 풍광 입니다 이화원에 들어가려면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합니다 이화원은 동문,북문,남문 그리고 서문으로 입장을 하는데, 곤명호를 한 바퀴 돌아서 서문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아침 일찍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준비하는 것을 권합니다 오늘은 동문으로 들어가는 패키지 투어와는 달리 자유여행인 저는 혼자 북문으로 들어 갑니다 10월은 중국 건국기념일이 긴 공휴일이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이 소주가(蘇州街)는 강소성의 소주의 거리 옛 모습을 재현한 곳 입니다. 이곳에서는 입구에서 미리 옛날 사용했던 돈으로 미리 바꾸어 놓았다가 음료수나 수공예품 같은 기념품을 살 때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시멘트로 2층의 집들을 지어 놓았지만, 울긋불긋 깃발을 집 마다 ..

북경 문화의 거리 유리창

琉璃廠 前門大街와 가까우며, 南新華街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의 인사동을 연상하게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가면 중국의 서예작품, 花鳥나 山水畵 등의 동양화, 文房四寶(붓,벼루,먹,종이) 그리고 골동품과 공예품,고서적 등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약 1km의 거리를 여유있게 걸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빨리빨리 걸으면서 휙~ 둘러보고는 유리창을 다 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ㅋㅋㅋ 서편에서 동편으로 육교를 건너갑니다 급고각다원(汲古閣茶苑)이 육교 바로 옆에 있습니다 차와 커피,맥주,음료 및 스낵을 팔고 있습니다 급고각화랑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육교를 지나가면서 서둘러서 천정을 찍었더니 사진이 흐리게 나왔습니다 육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찍었습니다 이 집은 굉보당(宏寶堂)입니..

북경의 대관원( 홍루몽) 7

대관루의 건축물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옆 건물과는 멋진 다리 모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회랑 벽에는 홍루몽의 연속 TV드라마 장면 사진들을 걸어 놓았습니다 고은사의(顧恩思義)는 원비가 직접 쓴 글이라고 했습니다 가씨 집안의 큰 딸 가원춘(賈元春) 입니다 인물이 빼어나게 예뻐서 궁궐로 입궐하게 되었고 곧 원비로 책봉 되었습니다 원비의 행차에는 수행원 100여 명이 긴 줄을 이었습니다 가원춘이 원비(元妃)가 되어 옛 집을 찾아 왔으니 가씨 가문에 새로운 영광이 찾아 온 것 입니다 성친별서(省親別墅)의 패방이 더욱 품위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 대관루는 황실 저택으로서 품위와 권위를 더 갖추었으니 가씨 집안의 큰 경사이겠습니다 홍루문화예술박물관도 있었습니다 성친별서(省親別墅)의 패방 뒷 면에는 국은가경(國..

북경, 홍루몽 저자 조설근 기념전시(대관원) 6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의 두상 입니다 시간이 맞으면 이곳 희대(戱臺)에서 펼쳐지는 홍루몽의 공연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조설근이 유년기를 보냈던 금릉(金陵 지금의 남경)에 있는 영국부(榮國府)의 전경 입니다 강소성에 있는 미인이 많고 경치 좋은 곳으로도 소문 난 양저우(揚州)인데 조설근 가족이 이곳에서도 지낸 바 있습니다 이 양저우는 소금거래의 집산지였고, 예전에는 소금거래 부자들이 많이 있었기에 미인들이 모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5년 여름에 양저우 시장의 오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이 식사자리에서 여성들의 전통 옷인 치파오(旗袍)를 입고 서빙하는 복무원들이 하나 같이 몸매가 날씬한 여성들이어서 명불허전임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사진은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에 대비하는 양저우의 수서호(瘦西湖) ..

북경, 홍루몽 저자 조설근 기념관(식물원) 5

조설근기념관 안에서 디카로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찾아냈기에 여기에 올려드립니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은 이름이 점(霑)이고 설근(雪芹)은 호입니다 중국 18세기의 위대한 문학가인 조설근의 태어난 연대가 확실치 않습니다. 북경 식물원 안에는 조설근 기념관이 있습니다 조설근이 식물원 내에 있는 이 조설근기념관에서 거주했다는 것도 약간 추상적이며 1963년에와서 "향산에서의 조설근전설" 의 글이 북경일보에 게재되면서 마치 전설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요령성 지역에서 (金)나라를 세운 누루하치의 모습입니다 조설근의 고조(高祖)인 조진언(曺振彦)은 포로로 잡혀 노예(包衣,포의)가 되었다가 재능을 인정받아 입궐하게 되었고, 이곳 저곳의 난을 평정하러 산서성, 강소성 등지를 다녔습니다. 조설근의 폭 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