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통부는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구경를 했습니다
총통부의 집무실 입구입니다
입구의 홀에는 손문,장개석,당시의 주여 인물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국민 정부의 대총통 손문 입니다
장개석과 부인 송미령 입니다
1948년 4월29일 장개석은 총통, 이종인은 부총통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부총통에 당선된 이종인(李宗仁)이 감찰원장인 우우임(于右任)과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방 저 방을 바쁘게 구경 했습니다
중화민국의 총통부 시기, 의전국의 군악대 사무용 방입니다
군악대 직원의 숙사 입니다
건물 밖에는 태평천국의 기의(起義) 100년 기념비가 있습니다
접견실 입구에 있는 것입니다
한 쌍입니다
외빈 접대실 안 입니다
현재도 중국 관공서의 외빈 접견실은 이런 식으로 좌석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총통부의 응접실 안 입니다
총통부의 집무실 구경은 이 정도로 끝내고,
중국 근대의 당시 어려웠던 경제와 사뢰 상황을 소개하는 포스터 등을 이 방 저 방에 들어가서 보았습니다
장개석 정부의 각종 조세가 너무 과중하다는 시사만평 입니다
장개석 만세(萬歲)라고 하면서 만세(萬稅)로 비아냥 거리고 있습니다
세계경제 공황이 일어났을 때 중국의 인플레는 살인적이었습니다
돈 다발를 한 묶음 자전거에다 싣고 가도 쌀 한 됫 박 사기가 어려웠습니다
경제공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당시의 사진입니다
당시의 화폐 100원으로 쌀을 사는 기준을 연도별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1945년엔 쌀(白米) 100근을 살수 있었으나 1948년에는 겨우 한 톨을 살 수 있었습니다
경제공황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요즘 80세 이하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입니다
1980년대로 제가 기억을 하는데, 중남미의 국가들도 극심한 인플레에 혼줄이 난 적이 있습니다
환율이 하루에도 수 차례 변동하는 바람에 미국 달러를 현지화로 돈을 바꾸기가 무서웠던 때 였는데, 아르헨티나는 당시 방에 벽지를 사서 바르는 것 보다도 차라리 현지 돈으로 벽을 벽지 대신에 바르른 것이 더 쌀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지난 어려웠던 시기의 상황을 중국이란 남의 나라에 와서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교육의 장이 아니었나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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