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걸으면서 보는 남경의 이모저모 (총통부 중국근대사 5-2 11

콩지88 2013. 6. 19. 23:21

 

총통부(總統府)에서 중국 근대사 일부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출입 장문을 통과하면 긴 사무실 같은 방을 지납니다

저는 그냥 통과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지체하면 자칫 제가 봐야 할 곳에서 그만 지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정문 가까이에 총통부 우체국이 하나 있습니다.

기념우표에 관심 있는 분들이나 기념 엽서를 이곳에서 발송하고 싶다면  들렸다가 가도 됩니다

 

 

처록섹의 청제 우체통이 있엇습니다

물론 지금의 남경 시내에서도 이런 우체통을 볼 수 있습니다

 

 

중축선을 따라서 쭈욱 걸어갑니다

 

 

기념품 매점도 지나갑니다

 

 

홍수전과  천조궁전(天朝宮殿) 역사문물진열관의 입구입니다

 

 

 

 

1853년 태평천국의 천왕 홍수전은  남경에 도읍을 정하면서 천경(天京)이라고 부르면서 청(淸)의 북경과 대립을 합니다

 

 

천국풍운(天國風雲)의 그림입니다

 

 

 

태평천국에 관한 설명입니다

 

 

태평천국의 천왕 홍수전의 좌상입니다

 

 

 

 

 

 

 

 

 

 

 

왼쪽에서 두 번 째는 이홍장(李鴻章), 오른쪽에서 두 번 째는 태평천국을 무너뜨린 증국번(曾國藩) 입니다

 

 

 

새 건물이 보일 때 마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듯한 기분입니다

 

 

 

1912년1월1일 손중산은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세움으로써 중국 최초의 공화정권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 대부터 지금까지 1월1일은 중화민국의 건국기념일로 삼고 있습니다

 

 

 

 

 

 

 

1945년5월 국민정부는 중경에서 남경으로 환도하였으며 주은래,장개석은 국공 평화회담을 개최하였습니다

 

 

 

 

1937년 일본군이 남경으로 진격을 시작하자 임삼(林森) 국민정부 주석은 수도를  남경에서 중경으로

옮깁니다

 

 

 

사진은 좌로부터 입법원장 孫과, 국부 주석 林森,감찰원장 우우임(于右任, 서예가로도 유명),행정원장 장개석(총리에 해당)

그리고 사법원장과 고시원장의 모습입니다

중화민국은 5원제로 되어 있는데 지금도 5원제를 그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손문의 글씨 "天下爲公"은 여기에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대만 타이뻬이에 있는 국부기념관이나 고궁박물관 패루에서도 이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중국 고위 인사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국가주석을 역임한 강택민

 

 

2003.9.15 가운데는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한 증배염(曾培炎),오른 쪽은 강소성 당서기

 

 

2009.5.2 국무원 부총리 오의(吳儀)

 

 

 

 

이 총독부의 건축물은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명 초에는 두 왕부(王府)의 자리였으며, 청대에 와서는 강녕직조서(江寧織造署)와 강남총독서(江南總督署)가 있었던 자리이며, 또한 건륭황제나 강희황제가 강남을 순시할 때는 행궁(行宮)의 역할도 했습니다

 

홍수전(洪秀全)은 태평군(太平軍)을 이끌고 남경을 점령하고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세우고 이름도 천경(天京)이라 바꾸고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다가 대규모의 태평천국 천조궁전(天朝宮殿) 즉 천왕부(天王府)를 지었습니다

 

1912년1월1일 손문은 이곳에서 중화민국 대총통에 취임하는 선서를 합니다.

이는 중화민국의 임시정부였지만 중국의 봉건군주제의 오랜 역사에서 공화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1948년5월20일 장개석(蔣介石)과 이종인(李宗仁)은 총통과 부총통에 각각 당선되어 국민정부가 총통제(대통령제)로 바뀌게 됩니다

1949년4월 23일 공산당의 인민행방군은 남경에 진격하고, 다음 날인 24일엔 총통부를 점령합니다.

부득이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옮겨갑니다

 

1949년10월1일 모택동이 천안문에 올라가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음을 세계에다가 선포합니다.

이로서 중국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란 두 개의 중국이 탄생되었습니다

 

1971년9월은 중화민국 국민들이 약소국의 서러움을 뼈아프게 느꼈을 것입니다. 중화민국이 그 때까지 지니고 있던 UN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중국에게 넘겨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날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는 형제지방(兄弟之邦)으로 가깝던 중화민국과 단교를 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수교를 하면서 지금은 전방위 협력국가로 새로운 변화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