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사찰

김천 직지사(동국제일가람) 3-2

콩지88 2012. 7. 1. 21:11

 

 

 

직지사는 임진왜란 때 43개의 전,각,료(殿閣寮) 중에서 천왕문,일주문,비로전) 3개만 남고 전소되었는데 70년 만에 중창(1662년 현종 3년)이 이루어져 복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범종각(梵鐘閣)입니다

 

 

 

범종(梵鍾)입니다

 

 

 

목어(木魚)가 상당히 큽니다

 

 

 

 

 

 

 

 

 

 

약사전(藥師殿)의 편액입니다

 

 

 

약사전(藥師殿)의 내부입니다

 

 

비로전(毘盧殿)과 동자상

고려 태조 때 능여조사(能如祖師)에 의해 처음 세워진 비로전은 태조 14년에 천불상이 봉안됨으로써 천불전으로도 불리웁니다. 14개의 나무계단에 경주 옥돌로 만든 천 개의 불상 중에서 발가벗은 동자상을 첫 눈에 볼 수 있다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담겨있습니다

 

 

 

 

 

 

비로전 앞의 석등 두 개입니다

 

 

 

 

 

 

 

 명월료(明月寮)입니다

 

 

 

 

 

명부전(冥府殿)입니다

 

 

 

관음전입니다

 

 

 

 

사명대사를 모신 사명각(四溟閣)입니다.

직지사는 사명대사의 출가사찰로 유명한데, 1559년 신묵대사의 제자가 되어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이끌고 왜병을 물리쳤고 또한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 바 있습니다.

 

 

 

 

 

사명대사(1544~1610)

경남 밀양 태생이며, 호가 사명당입니다

15세에 모친을,16세에 부친을 여의자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대사(신묵대사)의 제자가 되었고, 18세에 선과(선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습니다.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으며 32세 때는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표향산 보현사로 서산대사(휴정)를 찾아가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이끌고 승병장으로서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

 

 

 

대웅전

보물 제 156호인 직지사 대웅전은 원래 2층의 다섯 칸 규모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735년(영조11년)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불과 약사여래불을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으로 중건한 것입니다.

 

대웅전 앞의 삼층 석탑은 1974년 문경의 도천사지로부터 옮겨 놓은 보물 제 606호입니다

 

대웅전 후불탱화

불전 내부의 후불탱화는 보물 제 670호로 1744년(영조 20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웅전 외벽 3면에는 인간이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선종화입니다

 

 

 

 

 

 

 

성좌각(星座閣)입니다

 

 

 

 

 

 

대웅전과 3층탑입니다

 

 

대응전(大雄殿)의 편액입니다

 

 

 

외국인들도 사찰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열심히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