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과 건릉은 앞에서 소개한 용주사와 2km 거리에 있으므로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융릉과 건릉의 왕릉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소개글입니다
융릉과 건릉의 위치를 볼 수 있습니다
왕릉으로 가기 전에 입구의 왼편에 있는 소개 전시관을 먼저 들러봅니다
그리고나서 사도세자의 융릉을 보러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갑니다.
사도세자는 나중에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습니다.
따라서 묘(墓), 원(園), 릉(陵)으로 위 사진의 내용과 같이 이름도 바뀌게 됩니다
서삼릉, 영월의 장릉 등 아직도 제가 소개 못한 왕릉이 13개가 있습니다.
수원 화성의 행궁을 가면 정조대왕의 혜경궁 홍씨를 위해서 회갑을 맞아 특별 잔치를 베푼 정조대왕의 효행(밀납으로 만들어 놓았음) 등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들르게 되면 빼놓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저 맞은 편의 담벼락 가까이 있는 천연기념물 제504호로 보호되고 있는 개비자나무입니다
비자나무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개비자나무입니다 ㅎㅎ
개비자나무가 자라는 모양이 근사합니다
어느 왕릉이나 소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만, 이곳 소나무들은 정조대왕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부모님의 릉을 잘 관리하기 위해 심고 가꾼 나무들입니다
정성이 지극하다고 해서 송충이가 알아서 물러갈 일은 아니지요. 하도 송충이들이 소나무를 갉아먹으면서 극성을 부리기에 정조대왕은 어느 날 행차 길을 멈추고 가장 큰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서는 입에 넣어 씹어 죽이면서 "이 넘들아 너희들이 물러가지 않으면 한 마리 씩 계속 잡아서 송충이 씨가 마를 때까지 모두 씹어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송충이들에게 전해졌는지 극성을 부리던 송충이들이 이곳을 떠나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오른쪽의 융릉길로 먼저 접어들었습니다
산책길이 세 코스가 있으니 시간 여유에 따라서 돌아보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날씨가 워낙 추워서 융릉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와서 건릉으로 갔습니다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사도세자란 시호를 주었고, 정조는 아버지에 대해 장헌세자라는 시호를 드렸습니다
융릉을 나와 건릉으로 가는 도중에 정월 대보름을 맞아 민속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팽이돌리기와 윷놀이 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릉의 소개 글입니다
저는 새로이 단장한 화려해 보이는 단청보다는 색갈이 바랜 이런 수수한 원목색갈과 함께하는 단청을 좋아합니다
릉 가까이 접근을 금하고 있어서 멀리서만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동안 용주사와 융릉과 건릉 방문을 벼루고 벼루다가 이렇게 가장 추운 날씨(영하 15도)에라도 보고가게 되어 저는 마음이 무척 개운해졌습니다
용주사의 사천왕상을 사진에 담을 때 노출을 너무 많이 한 사실을 잊어먹고 결국은 이렇게 끝까지 흐릿한 사진들을 올리게 되어 한 편으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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