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北京 Beijing)

걸으면서 보는 북경의 모습들(12) 이화원의 경직도(耕織圖) 주변

콩지88 2012. 11. 4. 08:29

 

 

 

경직도(耕織圖)란 고대의 제왕들이 백성들에게 농사와 베짜기 등을 권장하는 중요 의식의 하나로 그림을 그린 것이였습니다.

남정네들은 밭에서 경작을 하고 아낙네들은 집 안에서 베짜기를 하는 그림들이 모두 48폭(경작 24폭, 베짜기 21폭 그리고 어제(御題) 3폭)을 검은 돌에다 음각으로 새겨 놓았 습니다.

여기에 전시된 경직도는 청대의 건륭시기에 원(元)대의 화가 程菜(Cheng Qi)가 그린 것인데 석각을 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경직도 찾아 가는 안내 표지입니다

 

 

경작도가 있는 주변 경관은 청대 건륭황제(1736~1795년) 때 조성된 것입니다.

나중에 경내에는 수촌거(水村居)를 두고 수병(水兵 해군 병사)들을 훈현시키는 장소로도  쓰였습니다

 

이화원을 안내하는 가이드들은 하나 같이 이화원을 만들 때 서태후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해서 해군의 예산까지 끌어다 썼기 때문에 해군의 전력이 떨어져서 중일 전쟁 때 일본과의 해전에서 참패를 당하였다고 말을 합니다. 산동성의 위해(威海 웨이하이)에는 청의 해군기지가 있었던 유공도(劉公島, 위해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10 여 분 거리)를가 있는데 이 앞 바다에서 일본 해군과 맞붙어서 청의 해군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은 단 몇 척의 거북선을 이끌고 대규모의 일본 전함들을 격파했음을 상기해보면, 중국 해군의 참패를 서태후에게 전부 뒤집어 씌운 느낌이 드는 것은  제생각이 너무  비약을 한 것일까요 ?

 

한 가지 더 첨언을 하면 이화원은 서태후 때 처음 만든 것이 아니고 한(漢)나라 때부터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1750년에 건륭황제가 모친의 축수(祝壽)를  위해서 황가의 화원으로 조성했으며,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칩입으로 파괴되고 불타버린 것을 1886년에 광서제 때에 해군예산을 전용해가면서까지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해서 이름도 이화원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그러나 1900년에 8개 국 연합군의 침입으로 다시 불타고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1902년 복구공사를 또 하여서 지금의 모습으로 남은 것인데, 1998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입니다. 

 

 

 

이 경직도 경치구역은 시간여유를 가지고 산책을 즐기면서 다니면 주변에 곤명호와 운하 그리고 물 가의 오랜 버드나무가 운치를 더 해주고,  산책로 옆엔 소나무, 뽕나무 등이 많아서 공기도 좋고 서제(西堤) 뚝방 길이 옆에 있고 하니 한 번 걸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다만 패키지 여행에서는 이 코스는 제외하고 있어서 제가 대신 개별 배낭 여행하실 분들을 위해서 소개를 하였습니다

 

 

 

 

검은 큰 돌에 새겨진 경직도는 그림도 잘 그렸고, 글씨도 유연하게  썼으므로 서화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한 번 권해봅니다

 

 

유리벽 안에다가 넣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햇 빛의 유리  반사로 인해서 돌에 새겨진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

 

 

 

 

 

 

이 주변에서는 양잠을 하였기에 뽕나무들이  있으며,  잠신을 모시는 사당 잠신묘(蠶神廟)도 있습니다

 

 

 

경직도를 전시하는 장랑(長廊)이 길었습니다

 

 

 

 

 

경직비(耕織碑) 입니다

 

 

중국에서는 정자를 만들어도 대칭으로 두 개씩 만듭니다

이 정자는 한 사람도 없이 텅 비었는데 ~

 

 

이 정자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쌍의 노익장 춤꾼이 음악 반주도 없이 그냥 탱고 스텝을 멋지게 밟고 있었는데 ~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척 부러운 눈으로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ㅋㅋ

 

 

정자를 떠나 수양버들 아래를 지나갑니다 

 

 

 

 

늘어뜨린 수양버들 가지 아래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곤 했습니다

바로 앞의 물은 배를 타고 이화원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운하이고 수양버들 뒷편은 곤명호의 서편에 쌓은 서제(西堤)입니다

 

 

 

 

귀엽게 생긴 꼬마 여자 애가 저를 보고 방긋 웃었습니다

 

 

이 여자 애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여러가지 폼을 잡아 줍니다 

 

 

엄마는 이 아이를 모델로 멋진 사진 작품을 만들 모양입니다

 

 

아이는 열심히 엄마에게 포즈를 취해 줍니다

잠깐이었으나 이 아이는 저에게 즐거운 시간을  주었습니다

 

이 곳을 떠나 저는 남문(南門)이 있는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해가 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가급적 문창원(文昌院)과 17공교(孔橋)를 돌아보고나서 동궁문(東宮門)으로 나갈 생각이었지만 가야 할 거리를 보니 8km가 넘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