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자재암까지는 50m에 불과한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자재암의 지붕이 보였을 때 안도의 숨을 크게 들이켰습니다
휴~
내려 오면서 자재암 지붕의 기와를 덮은 붉은 단풍을 다시 담아봤습니다
용머리가 둘이나 있는 나한전 입구입니다
두 석상이 나한전의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5시가 가까워지면서 해가 지면서 노을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자재암(自在庵)의 편액도 담았습니다
극락교를 건너 갑니다
해탈의 문에 가까이 와서는 아래의 경관을 감상했습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종이 대롱대롱 혼자 매달려 있습니다.
제가 종을 한 번 치고는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원효대사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가 작은 별궁을 이곳 주변에다 짓고 살았다는 터인 요석별궁지(요석별궁지)입니다
그림만 보고는 무심코 지나가기 쉽습니다.
바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얼굴입니다
원효대사와 瑤石公主 이야기
요석공주는 신라 29대 무열왕의 딸로서 이곳에 와서 瑤石宮에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이 무렵에 30대의 원효라는 스님이 전국 방방곡곡을 “그 누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는 것이었다.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는 “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태어난다면 이처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하면서 요석궁에 혼자서 지내는 요석공주와 짝을 맺도록 하였다. 그 후 요석공주는 대유학자인 설총(薛聰)을 낳았다.
원효는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고는 파계승이 되었으며, 속인의 옷을 입고 손에는 표주박을 두드리면서 마을들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교화(敎化)하였다. 그러다가 이곳 소요산의 원효대까지 오게 되어 원효대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하였다.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요석궁에 살면서 아침 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고 있는 원효대를 향해 배례를 올리곤 하였다. 공주봉(公主峯)이란 산봉우리의 이름이 이때 생겼다고 한다.
요석공원(瑤石公園)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년)와 부인이었던 瑤石公主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공원이다.
소요산역으로 가면서 만추의 단풍을 하나하나 담아봤습니다
6.25 한국전쟁과 UN군의 활약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는
자유수호 평화박물관은 시간이 없어서 그냥 통과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강색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그냥 건강오행로를 통과합니다
자재궁에 오르면서 본 좋은 글을 담아서 올려드립니다
요즘은 오로지 선거 표에만 관심이 있는지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는 올바르고 굳은 정치이념을 가진 분 만나기가 참 어렵네요 쯧쯧 !
소요산 역에 도착하니 5시 25분이었습니다. 출발시간은 5시 39분이어서 차가 올 때까지 그간의 피로를 의자에 앉아서 풀었습니다. 소요산역에서 종로3가역 까지는 한 시간 20분 정도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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