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성

중국 제자백가들을 찾아가다 (묵자,연) ~1

콩지88 2017. 1. 19. 07:32



제자백가(諸子百家)


기획 취재의 하나로 중국 제자백가의 인물을 찾아갑니다

저는 묵자부터 소개해 드립니다

묵자(墨子, 法家)

묵자는 노(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이 적(翟)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유학을 배우면서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겸애(兼愛)를 주장하면서 의롭지 못한 전쟁을 반대하였습니다. 또한 화려한 장례 절차와 순장(殉葬)을 반대하였습니다

묵자의 법가를 논하자면 한비자(韓非子)를 빼 놓을 수 없지만, 여기서는 그냥 지나 갑니다 ~


묵자가 산동성의 웨이팡시 사람으로 그리고 연의 발명가로 알고 찾아 갔으나, 묵자의 흔적은 거의 찾지 못하고 연의 진짜 시조로 알려지고 있는 노반(魯班)을 만납니다

그리고 웨이팡의 국제연날리기 광경을 담아 왔습니다



중국의 연들은 모양이 동물에서 상상 속의 용 등등 아주 다양 합니다



웨이팡(濰坊 유방)시는 칭따오시(靑島 청도)와 가까이 있는 교통의 요지이며,연(風箏 풍쟁)이 노반(魯班)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곳으로 매 년 국제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참가 하고 있습니다.




공룡은 너무 커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연은 너무 길어서 사진에 다 잡히지 않았습니다



제비 모양의 이 세 연은 잽싸기가 여간 아닙니다



중국에선 큰 행사에서 용(龍)이 빠지면 안돼지요?



공중을 나는 말 입니다





연의 고장이어서 중국 유일한 연박물관도 있는데, 소장하고 있는 연의 종류도 다양하고, 우리나라의 단순한 연 날리기와는 달리 연줄 감는 타래도 큰 연의 무게와 바람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어깨에다 메고 연 날리기를 조정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연이 유명한 도시이다 보니 이곳 방문 기념품으로 각종 연을 팔기도 합니다,







공룡이 일어나 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공룡 위로 말과 문어 등이 날고 있습니다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으나 결국 공룡은 끝내 날지를 못 했습니다




덩치가 큰 코끼리는 일어 나서 날 준비를 합니다



오른쪽 손오공 옆에 칭따오(靑島)맥주 연까지 떠 올랐습니다

웨이팡시의 옆 도시가  청도시 입니다





                                                                    연의 시조 공수반은 로반을 지칭 합니다




노반(魯班)은 풍쟁(風箏) 즉 연의 시조(始祖)라고 써 놓았습니다






이 웨이팡 시가 묵자의 고향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묵자가 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연의 시조(風箏之始祖)가 노반(魯班)이라는 사실만 확인을 했습니다. 이 노반이란 사람 역시 연대가 미상인데 돈황인(燉煌人)으로 태평관기(太平廣記)에 기록이 있다는 것만 제가 확인 하였습니다





팁 1


제가 웨이팡 시를 방문했을 때 이 시의 당서기가 저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미니 연 셋트였고 또 하나는 鄭板橋(정판교)가 쓴 글씨 “糊塗難得(호도난득)이란 복사본 이었습니다


이 정판교의 글씨를 제가 받은 배경은 이렇습니다

점심을 이 당서기의 옆 자리에서 함께 하는 도중에 제게 물었습니다.

“총명(聰明)과 호도(糊塗)는 어느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지요?”


느닷없는 갑작스런 질문이었으나 저는 바로 “호도가 총명보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하고 즉답을 했습니다.

다음 날 제가 웨이팡을 떠나 웨이하이(威海市)로 출발하기에 앞 서 조찬을 이 당서기와 다시 가지는 기회를 가졌는데, 어제의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이 좋아서(?)였는지 “糊塗難得”이란 정판교의 글이 담긴 족자를 제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정판교의 이 글씨에 대한 설명과 사진을 몇 년 전에 제 블로그에 올려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웨이팡은 중국 민화(民畵)의 판화(版畵)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니 관심을 가지고 보면 좋을 것이며, 바로 이웃의 청주시(靑州 칭저우)에는 중국의 사(詞)의 부문에서 여류작가 이청조(李淸潮)의 작품을 소개하는 청주박물관이 있음도 부연해 소개 합니다


팁 2


노반(魯班)은 묵자와 비슷한 시기의 장인으로 공수반(公輸般 옛날 목수가 사용하던 먹통의 발명자)으로 이름들 떨쳤던 사람 입니다. 초(楚)나라에서 송(宋)나라를 치기 위해 운제(雲梯 성곽 공격을 하기 위한 높은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비공(非攻)론자였던 묵자는 초나라에 찾아 가서 노반에게 송나라를 공격하지 말것을 초왕 앞에서 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왕은 묵자의 의견인 비공(非攻)을 좇아서 송나라를 공격하지 않았고, 송나라는 묵자의 음덕에 전쟁의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