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강원도 양구 시티투어(양구의 근현대사박물관)

콩지88 2016. 4. 27. 06:29

                                                   

맑은  냇물의 하얀 포말 사진을 열심히 담는 것과 두타연의 전설을 공부하고 저는 시티투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제 귀로 길에 들릴 곳은 양구 명품관(주로 양구의 농산물 판매장임)과 양구근현대사박물관 두 곳 입니다



박물관 앞에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와 작은 연못 입니다

어느새 창포꽃(붓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양구근현대사박물관 입구 입니다



1층 로비에 수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초가 집 옆의 것은 새집 입니다

한 때 산속의 집 없는 새들을 위해서 이런 짚으로 엮은 또는 나무로 만든 새집을 나무에 달아주는 운동도 펼쳐진 적이 있지요



우리나라의 현대사 중에서 몇 가지 연대를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우리나라 경부선에 통일호가 개통된 것이 1955년 이었습니다

1959년 경제개발 3개년의 단기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에 5개년 계획으로 새로 시작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는 성인군자처럼 하나의 흠집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와 실을 함께 잘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過)만 침소봉대하여 평가하면 언제나 그 정치인은 "물러나라" 하는  지탄의 소리를 듣게 마련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이룬 훌륭한 업적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거제도 반공포로 석방을 미국의 눈치 보지않고 강행한 것이나, 우리나라 바다의 영역을 선포하고 일본에 대하여 강한 외교의 힘을 보여주었던 일은 참 잘 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 4월 대대적인 학생데모 시위 때 "국민이 원한다면 ~ " 주저없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함으로써 피를 흘리는 큰 희생을 막아주었습니다


지금도 중국 북경의 천안문 벽에는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등소평 시대에 접어 들면서 개방개혁을 실시하면서 외관상으로는 굉장한 경제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은 1953년부터 실시한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의 도입은 엄청난 피해를 인민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대약진 운동 3년동안에 3천 만 명 이상의 인민이 기아로 죽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10년 기간은 겪은 자들의 기억으로는 지옥에서 살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릅니다. 이 때 목숨을 잃은 인민들 숫자 역시 천문학적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공(功)에 더 비중을 두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등소평이 개방개혁을 실시하면서 "흑묘백묘(黑卯白卯)" 논리는 이념투쟁 보다는 실사구시의 성과를 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등소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 그것은 빈부의 격차가 너무 극대화되고 있고, 권력자들의 부정부패가 극심한 데 따른 것입니다. 심지어는 모택동 시절이 그립다는 인민들의 숫자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평등이란 구호 아래 다 같이 만두를 먹더라도 인민공사에서 같이 먹고(한 솥에 밥 먹는 것으로 一大鍋飯(일대과반)이라고 표현합니다) ,돈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복장에 신경 쓰지 않으니  가난해도 좋다는 의식이 팽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의 실현은 곧 지상낙원 건설이라고 선전 한 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북한의 현실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2008년 까지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이 시작 되었습니다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했고 우리나라도 월남이 월맹에게 패망할 때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 했습니다

1969년 하반기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전 세계에 TV 생중계 되었습니다 . 대만은 칼러 TV를 1969년부터 방영을 하였는데 마침 대만에서 공부하던 떼여서 저는 아폴로 달 착륙이 칼러로 중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1972년 미국이 핑퐁 친선시합을 상해에서 가지면서 중국과의 화해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소위 핑퐁외교란 말이 이 때 생겨 났습니다



6년 국민 의무교육 시절의 국민학교 여러 교과서들 입니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신문에 연재될 때 연재했던 그 신문 발행부수가 급격히 늘어날 정도로 대중들에게 시선집중과 충격을 안겨 주었던 작품으로 영화제작까지 되어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치 서양의 노라가 인형의 집을 뛰쳐나간 후여서 더 그랬는지 모릅니다



제4땅굴이 양구 북쪽 비무장지대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지금은 양구시티투어 일요일에 땅굴 방문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봤고,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등 여러 기념 우표들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제가 대만에 있을 때 장개석 총통은 매 년 쌍십절 기념행사에서 중화민국 만세, 광복대륙(光復大陸), 삼민주의(三民主義) 만세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당시엔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 구호와 서로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어서 한 대만 관계는 형제지방(兄弟之邦)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형제지방이란 형제처럼 가까운 나라로 해석을 해야지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냐를 굳이  따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만의 경제발전은 1965년도에 대만의 대중(臺中)에 하나,고웅(高雄)에 두 개의 모두 3개의 수출가공구(EPZ Export Processing Zone)를 만들었으며, 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참고로 하여 마산수출자유주역무역지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등소평 시절에 대만과 한국의 이런 시스템을 참고로 4개의 경제특구(나중에 해남성 전체도 특구로 지정하여 모두 5개)를 만들었습니다





IT 산업의 발달로 스마트 폰의 막강한 힘에 밀려 지금은 거의 골동품 신세로 추락한 우체통 입니다

빨간 우체통에는 속달과 해외로 나가는 우편물을 따로 분류해서 넣곤 했습니다



서편제의 영화 포스터 입니다



이 박물관에는 김형석 교수 등 석학의 기증물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개혁파 김옥균의 한문 서예글씨 입니다

"盡忠報國(진충보국)"













덕담에 사용되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외에 12지간(支干)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마치 막 발굴한 고분의 입구 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현대식 화장실 입니다 ㅋㅋㅋ



근현대사박물관 맞은 편은 양구선사박물관 입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입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양구는 우리나라 한반도의 지도상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중앙 양구라는 말을 씁니다



박물관 근처에 있는 양구 명품관 입니다



양구 농신믈을 위주로 팔고 있습니다

저는 기념으로 검은 콩 서리태와 적두(赤豆 팥) 한 봉지씩 샀습니다



이 양구명품관은 춘천역 옆에 있으며, 양구 시티투어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양구 명품관은 두 개가 있습니다




춘천역을 나와 왼편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춘천역 출입구 입니다



양구시티투어 버스 입니다

무엇보다도 앞 좌석과의 공간이 넓어서 아주 편했습니다



뒤편에는 춘천 시티투어 버스 타는 곳 입니다

남이섬 투어나 새로 개발된 상품인 호수 중심의 시티투어 버스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 스케듈에서 한반도 지형을 인공으로 만든 섬이 공사중이어서 못봤습니다. 5월에 다시 개장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Zip Line 타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