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단종의 유배지 영월의 청향포

콩지88 2014. 6. 3. 11:30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靑泠浦)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의 청량포 립니다

삼면이 불이고 한 면은 깍아지른 절벽 입니다

 

단종은 1441년7월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 임

1448년 8세의 나이로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문종이 즉위하고, 홍위는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52년 5월 문종이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제6대 왕의 자리에 오름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1455년 6월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9재위기간은 1452년 ~1455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됨

 

박팽년,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이 되어 사육신의 사건이 발생하고, 1457년(세조 3년)에게서 상왕의 자리가 노산군으로 감봉되었다가 그 해 윤6월에 청령포로 유배됨.

 

창덕궁을 떠나 50명의 군졸 호송하에 7일만에 청령포에 도착

그 해 9월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면서 단종은 서인으로 내려지고 1457년 10월에 관풍헌에서 사사를 당하게 되었으니 그의 나이는 17세에 불과하였습니다.

 

 

 

 

단종의 유배지 청량포를 가려면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야 합니다

 

 

 

 

매표 시간은 오후 5시까지 입니다

 

 

사공이 노를 저어서 물을 건너는 것이 상황에 어울리겠지만 속도와 인건비를 감안 해서 동력선을 이용하겎지요?

 

 

 

 

서울에서 부터 함께 온 남녀 일행인데 커플링 모자가 시선을 끕니다

 

 

 

 

 

 

 

 

 

 

소나무 하나가 몸을 낮추고 어소를 향해서 담장을 넘어 샀습니다

 

 

 

 

 

 

 

단종의 어소

지금 사진의 단종 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들과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에는 밀납으로 만든 단종과 문안인사를 들이는 신하를 볼 수 있습니다.

 

 

 

 

 

 

 

 

 

 

 

 

 

 

청령포 수림 속의 관음송(觀音松)

영월군 남면 광천리 청령포의 주변에는 수 십 년에서 수 백 년이 넘는 키가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 숲 가운데에 높이 30m, 둘레 5m의 큰 소나무가 있는데 198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입니다.

아래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위로 크게 자란 이 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단종이 가끔 이 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옵니다. 단종의 유배 당시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 보았고(觀), 때로는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도 들었다(音)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숲 가운데를 지나 이 계단을 오르면 왼편은 망향대 오른편엔 조산대가 나옵니다

 

 

망향탑(望鄕塔)

관음송을 지나서 계단 길을 조금만 오르면 왼편에 망향탑이 있습니다. 단종이 청령포의 뒷 산인 육육봉(육육봉)과 노산애 사이의 층암 절벽 위에다가 단종이 막막한 앞 날과 한양의 부인 송씨를 생각하면서 주변의 막돌들을 주어다가 쌓은 것이 단종의 망향탑입니다

저는 오른쪽의 노산대로 가는 길로 해서 흐르는 강과 주변의 산 풍광을 구경했습니다

단종의 마음이 찢어지는 아품을 나타내려는지 이곳 주변 소나무의 균열된 껍질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단묘재본부시유자(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앞면에 새겨져 있는

이 비는 1763년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는 162cm의 크기인데 음각으로 새겨진 이 글은 울면서 받들어 쓴 영조대왕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 내용 중에 이곳이 청령포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왕방연의 시조비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고, 돌아가는 길에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비통하게 읊었다는 시조입니다

천만리 머나 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 길 예 놋다

 

 

 

 

 

 

 

 

 

 

 

 

 

 

 

 

 

 

노산대를 둘러보고 내려오다 보면 이 금표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청량포금표라고 쓰여 있습니다

청령포 금표비(淸泠浦 禁標碑)

이 금표비는 일종의 통행제한을 고시한 비라고 보겠습니다.

앞 면에는 “淸泠浦 禁標“ 뒷 면에는 東西三百尺,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 (동서 300척,남북 490척, 이 후에 진흙으로 덮일 경우에도 역시 금지 함)

그리고 옆 면에는 “崇禎九十九年“이 음각 (陰刻)되어 있으니 한 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