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성의 성도 남창시(南昌市 난창)
중국 강남 3대 누각의 하나인 등왕각(藤王閣) 9층 57.5m의 높이로 우뜩 서 있습니다. 당나라 태조 이세민의 동생인 등왕 이원영(藤王 李元嬰)이 홍주도독(洪州都督)으로 부임하였을 당시 653년에 지은 것입니다.
이 등왕각은 많은 문인들과 정치인들의 모임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등왕각의 야간 모습입니다
시인 왕발(王勃 650~676년)의 “등왕각서(藤王閣序)”는 아주 유명합니다.
등왕각서 중에서
“낙하여고무제비,추수공장천일색(落霞與孤騖齊飛, 秋水共長天一色)”의 구절은 불변의 명문입니다.
남창 시내 중심에는 높이 45.5m의 8.1남창기의기념탑도 있습니다
광장의 이 기념관은 북경 천안문 광장 인민대회당 맞은 편의 국가박물관과 외형이 거의 비슷 합니다
팁
중국공산당 역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1927년8월1일 새벽 2시에 혁명무장부대가 국민당 군대를 향해서 쏜 총알을 시작으로 무창(武昌은 한구(漢口)와 함께 무한(武漢 )광역시의 포함) 등지에서 동시에 일어난 것이 8.1남창기의(起義)입니다.
총지휘부 유적지인 5층 건물이 중산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은 남창기의기념관(南昌起義紀念館)이 되어 있습니다. 숫적으로 크게 열세인 공산당 군대는 정강산으로 집결하여 저항을 하다가 점차 강하게 조여 오는 장개석 국민당의 국부군에 밀려 정강산을 탈출하여 산서성의 연안(延安)을 향한 12,500km의 소위 대장정(大長征 The Long March)이 1934년10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출발시에는 8만5천 명 정도의 홍군이었으나 24개의 강을 건넜고, 18개의 험준한 산맥을 넘어 18개의 성(省)을 통과하는 등 370일이라는 고난의 길고 긴 행군을 해서 도중에 지쳐서 탈락하거나 병을 얻어 사망 하는 등 연안에 무사히 도착한 자는 츨빌 인원의 10% 인 겨우 8천 명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공산당의 홍군은 대장정을 통해서 잃은 것이 많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단합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행군 중에 만난 농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큰 성과로 평가 합니다. 즉 농가에서 물건을 약탈하지 말 것과 부녀자를 절대로 겁탈해서는 안된다는 상부의 지시가 농민들의 환대를 받게 되었던 것이고 공산당이 승리를 가져 온 원동력이 되었던 것 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공산당 군대인 홍군은 다시 재정비되어 나중에는 장개석 군대를 대만으로 몰아내는 성과를 올리고 1949년10월1일 모택동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광장 앞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만방에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 것 입니다
정강산(井岡山 징깡산)은 대장정의 출발을 기점으로 하여 신중국 수립이라는 최후의 승리를 성취한 만큼 중국 공산당혁명의 요람으로 부르고 성지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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