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산서성의 대동에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장강 북쪽이 북위의 광활한 관할 영토 입니다
북방민족 흉노,거란,몽골,만주(여진)의 제국건설의 역사를 찾아서 EBS TV에서 여러 날 도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영하였습니다.
그동안 중국의 중화사상에 젖어서 바라보던 이들 북방 민족들의 역사를 이제는 중화사상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내용을 좀 간단히 정리해서 올려드립니다
흉노(匈奴 훈(Hun)족(族)
진(秦)나라(BC 221년 ~AD 206)가 기원전 221년에 중국 천하를 통일하면서 흉노족을 몽골 땅으로 몰아내고, 앞으로 흉노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진시황제 시대에 만리장성을 다 쌓은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 이미 일부 구간에는 장성을 쌓아 놓은 것이 있었는데, 진시황제 때 이에 더하여 확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날 북경의 팔달령(八達嶺)에 가서 보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몽골족의 침입을 막고자 쌓은 것이며, 200년에 걸친 오랜 세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보수와 증축을 해 온 것이 지금의 만리장성입니다.
진(秦)나라와 다음의 한(漢 201~ ) 때에 이루어졌던 흉노와의 관계에 대해서 먼저 들여다 봅니다.
한(漢)나라와 흉노
유방이 항우와의 5년간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걷우고 세운 나라가 한(漢)나라인데, 전반 200년을 전한(前漢)이라고 하며 그 후 200년간은 후한(後漢)이라고 합니다. 또한 전한의 수도는 서쪽의 서안에 있어서 서한(西漢), 그리고 후한의 수도는 낙양으로 광무제 때 옮겼는데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한(東漢)이라고도 부릅니다.
한나라 통일 후는 국력이 강하지 못하여 흉노에게 굴욕적인 협정을 맺기도 했으나, 곽거병이 주천,무위에서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몽골초원으로 몰아낸 일은 감숙성 소개시 포스팅을 한 바 있는데, 가욕관 일대와 지금의 신강지역의 흉노는 반초(班超)가 출병하여 흉노를 몰아내고 작은 왕국들을 한나라로 복속 시켰습니다. 반초는 한서의 (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입니다
당시 한나라 서방의 변방 국가들로는 지금의 신강위그르 자치구에 있는 선선(피찬), 소륵(疏勒카슈가르),우전(코탄)사차(莎車 야르칸트) 등이 이 때에 평정되었고 왕망의 난 이후 65년간 중단되었던 서역 변방지역과 천산남로 지역과의 교통,정치,경제 관계를 복원시켰습니다. 서기 75년에 반초는 원정을 중단하고 돌아오라는 3대 장제의 명을 거역하고 서역 땅에서 30년을 지냈습니다
반초에 의해서 사차(莎車 야르칸트)가 평정되던 이 무렵은 북흉노의 서역 땅에 미치던 힘이 쇄약해지는 시기였습니다. 후한의 4대 화제(和帝)는 서기89년 서역으로 두 번이나 출정하였고, 북흉노와 세력을 다투던 남흉노와 함께 북흉노를 크게 무찔렀는데, 때문에 북흉노는 서역 땅에 더 이상 힘을 쏟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결국 북흉노는 서기 89년부터 더 서방으로 이동하여 게르만족들을 몰아내고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 때 게르만족들이 서로마 영토 안으로 대거 이주하게 되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기 90년 반초는 서역도호(서역도호)에 임명되어 지금의 구차(龜玆 쿠차)에 머물면서18년째 되던 서기 90년에는 언기(焉耆 카라샤르)도 평정하는 등 50여국과 후한과 우호관계를 맺습니다. 이 공로로 반초는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집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한무제 때 흉노족을 몰아내기 위해서 대월지와 연합하기 위해 특사로 보낸 장건이 도중에 흉노군사에 잡혀 10년간 머물다가 현지 흉노족 처와 자식을 데리고 대월지까지 갔으나 연합하여 흉노를 물리치자는 합의는 거절당하고 13년만에 장안으로 돌아오면서 경험한 서역의 지리환경과 현지인들의 관습 등은 나중에 흉노와의 전쟁에서 최후 승리를 장식하는데 큰 몫을 했고, 곽거병과 반초는 흉노군사를 몰아내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으니 역사의 전개는 정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하나 봅니다. 지금의 중국 광활한 서쪽 영토가 이 때에 기반이 잡힌 것이지요.
한편 북흉노와 세력권을 다투던 남흉노와 연합하여 한나라가 북흉노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자 북흉노는 광활한 북방의 영토에서 서쪽으로 대이동을 시작하고, 대신에 무주공산 같은 데서 소위 5호(五胡)인 선비(鮮卑),흉노(匈奴),강(羌).저(氐),갈(羯) 등이 세력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이 중에서 선비족이 가장 빨리 세력을 확장하고 흉노제국에 이어 등장한 선비제국인 북위(北魏)를 건설합니다
흉노제국에서 선비제국 북위 까지의 파란만장한 국가들의 부침 을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흉노족이 지배하던 북방의 서역 땅 지금의 감숙성 주천,무위 일대는 곽거병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몽골초원으로 물러납니다
천산남로의 지금의 신강위그르자치구의 흉노는 반초와의 전투에 패하여 몽골초원으로 물러닙납니다
흉노는 내부 세력 다툼으로 북흉노와 남흉노로 갈라지는데,
한과 남흉노는 연합하여 북흉노를 공격하자 많은 흉노 유목민들이 서쪽으로 대이동을 하니 이미 거주해오던 게르만족들이 서로마까지 대이동을 하게 됩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입니다
삼국시대
후한(무제가 서안에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서부터 약 200년 간)도 말기에는 지방 곳곳에서 황건을 머리에 두른 농민의 봉기인 황건적의 난이 일어납니다
황건적 토벌에 관군을 이끄는 조조가 등장하고, 이어서 유비,관우,장비 그리고 제갈량이 소규모의 군사로 황건적 토벌에 나서며, 이 시대에 중원 남쪽의 오나라 손권도 등장하여 삼국시대가 열립니다
촉한의 관우,장비,유비가 죽고 제갈량 또한 출사표를 남기고 전장에 나가 죽으니 촉한은 43년만에 사라집니다.
위의 조조는 생전에 삼국통일의 기반을 쌓았지만 삼국 통일은 보지 못합니다.
위의 마지막 왕인 조환은 (실권자 사마의의 아들인) 사마염에게 자리를 위양합니다.
위 나라는 46년만에 멸망합니다
사마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수도를 낙양에 정하고 나라 이름을 진(晉) (서기265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마염이 천자의 자리에 오른지 15년에 오나라의 수도 건업(建業 지금의 남경)을 공격,오나라 취후의 보루 석두성(石頭城)을 깨니 오나라는 4대 52년(서기280년)으로 멸망하게 되어 삼국시대는 통일이 되고 막을 내립니다
진(晉) 서진(西晉)과 동진(東晉)
진(晉)은 수도가 낙양이던 265~316년의 52년의 전반 기간을 서진(西晉 )이라 부르고 수도를 건강(建康 건업과 같은 지금의 남경)으로 옮긴 317~420년의 후반기는 동진(東晉)으로 부릅니다. 진(晉)은 서진과 동진 합쳐 156년간 존속 하였습니다
서진의 말기에 왕족 8명이 약 16년 동안 세력다툼(8왕의 난)을 벌였는데, 이 때 왕족들이 북방의 이민족 세력을 중원으로 불러들였으니 결과적으로 서진은 망하고 중원에는 흉노와 선비 등 소위 5호(胡)와 16국이 난립하게 됩니다
5호(胡)와 16국 시대
5호(胡)란 흉노,선비,강,갈.저(匈奴,鮮卑,羌,羯.氐)를 말 합니다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는 흉노의 한국(漢國)입니다. 유연의 아들 유총 때 서진을 멸망 시켰고, 유총이 죽은 후 내분이 일어나 유요의 전조(前趙)와 석륵(石勒)의 후조(後趙)로 분열되었고, 석륵이 유연을 죽임으로써 전조는 37년 만에 망하고, 후조는 선비의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전연(前燕)에 의해 멸망하고 전연은 저족(氐族)의 부씨(符氏)가 세운 전진(前秦)에 의해 멸망 합니다
전진의 저족은 지금의 섬서성,감숙성,사천성 일대에서 살던 민족입니다
전진왕 부견은 동진을 정벌하고자 90만의 대군을 이끌고 6월에 장거리 원정 길에 나섰으나 지치고 병든 병사들이 첫 동진 군사와의 대전에서 대패하자 도주하는 병사가 많았습니다. 부견은 남은 군사 10만을 선비 모용수의 지원을 받아 낙양에 돌아왔습니다. 부견 휘하의 이민족 우두머리들이 하나 둘 부견을 떠나자 모용수는 이 난세의 기회를 이용하여 군사를 모아 385년에 연(燕)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중산(中山 지금의 하북성 정현)에 정했습니다. 역사서에는 후연(後燕)이라고 했습니다
효무제는 불교를 신봉하여 승려들과 가까이 하면서 사원건립에 나라 재정을 탕진하는데 사이비 승려들까지 날뛰니 사회 풍기가 문란해졌습니다. 396년 무제가 죽고 정신박약인 15세의 안제가 즉위하니 그냥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399년 손은의 난 때 북부군과 함께 서부군이 합하여 난을 평정하였는데, 이 때 서부군의 총수는 환현(桓玄)이었는데, 나중에 안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고 나라 이름을 초(楚)라고 했습니다. 안제는 심양에 유폐시켰습니다.
그러나 황제 환현 타도를 외치면서 군사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는데 그 중에 유유(劉裕)가 가장 두각을 나타냈는데 환현은 유유 군사들의 추격에서 피살 당합니다
유유는 서두르지 않고 안제를 복위시키고 자기는 친히 두 번의 북벌 원정을 나가서 남연(南燕)과 후진(後秦)을 차례로 멸망시킵니다. 얼마 뒤 유유는 안제를 시해하고, 동진의 마지막 황제인 공제를 협박하여 제위를 선양받아서 송(宋) 왕조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남조의 시작입니다. 이제 중국은 남조와 북조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南朝)는 동진(東晉)에서 송(宋)으로, 송은 제(齊)로, 제에서 양(梁)으로, 양은 진(陳)으로 이어 집니다
북조(北朝)는 16국으로 분열되었다가 북위(北魏)에 병합됩니다. 북위는 서위(西魏)와 동위(東魏)로 나뉘고, 동위는 북제(北齊)로 서위는 후주(後周)로, 그리고 후주는 북제를 병합했다가 수(隋)로 이어집니다. 수는 다시 남조의 진을 병합하니 남북이 통일되는 왕조가 태어났고, 이 수에 이어서 당(唐)이 등장 합니다
남북조시대는 북위가 북부 중국을 통일한 439년부터 남조의 진이 수나라에 멸망한 589년까지 약 150년간을 말 합니다.
이상과 같이 한(漢)나라가 망하면서 삼국시대를 거쳐 5호16국, 그리고 위진남북조에 이르기 까지 150년 동안에 한족이든 북방 유목민족들의 나라들이 세워지는가 하면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합니다. 따라서 이 때의 많은 나라 이름들이 워낙 유사하여 저도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선비 척발씨가 북위를 세우는 배경 이해를 하기 위해서 위와 같이 시대별로 나라 이름들을 정리해서 여기에 올렸으니 중국 역사 연대 이해에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5호16국의 시대 막을 내리다
모용수의 동생 모용충(慕容沖)은 선비족을 모아 부견의 장안을 공격하고 빼앗자 부견은 오장산(五將山)으로 도피했습니다. 이번에는 강족(羌族)의 요장(姚萇)이 부견을 생포하여 죽이고 옥새를 빼앗고 나라를 세워 진(秦)이라고 부르니 부견의 전진과 구별하기 위해 후진이라고 부릅니다 . 모용수의 후연과 요장의 후진은 서로 동서로 대치하고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 합니다
이 시기에는 서진(西秦), 후량(後凉), 남량(南凉),서량(西凉),하(夏) 등의 10여 개의 나라들이 있었는데, 선비족 척발씨(拓跋氏)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 집니다
척발씨(拓跋氏)에 의해 통일이 되자 130여 년간 이어졌던 5호16국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5호16국의 흥망을 나타낸 지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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