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정보

서성 왕희지(書聖 王羲之)와 두 아들의 글씨

콩지88 2011. 8. 9. 08:34

gw88 > 서안,화산,화청지

중국여행정보(서안 비림박물관,서성 왕희지 글씨,아지비와 난정)

(1) 서성 왕휘지의 글씨





위 사진운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그림을 2009년9월10일 제가 서잔애 덤운 것인데, 그림은 일본인이 그린 것 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그림의 전시가 안되고 있습니다  ~


 

동진(東晉)시기의 왕희지(321~379년)는 중국의 서성(書聖)으로 부릅니다.
왼쪽은 난정서첩(蘭亭書帖)의 석각으로 높이는 26cm,  폭은 75cm로서 서안의 비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석각은 청나라 때(1662~172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53년 왕희지,사안(謝安) 등 41명이 난정(蘭亭,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에 있음)에 모여 시짓기 내기를 하며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왕희지는 즉석에서 모아진 37수의 시에서 324자의 서문을 썼는데 이것이 천하제일행서로 유명한 난정집서(蘭亭集序)입니다.

 

당 태종은 왕희지의 글씨를 너무나 좋아하여 소릉(昭陵)에 묻히기 전에 난정집서를 함깨 배장(陪葬)하여 달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직 당 태종의 무덤인 소릉은 발굴되지 않고 있는데,훗날 소릉 발굴시 과연 왕희지의 난정집서가 나올 것인가는 세계 역사학자는 물론 서예하는 분들의 큰 관심거리입니다.

 


이 난정서의 글자는 생동감이 넘치고 변화가 무쌍한데 행서체(行書體)로 쓰여진 23자가 유사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난정집서를 세상에서 더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 절강성의 소흥시(紹興市)에 난정(蘭亭)이 있으며,이곳에서  매년 음력 3월3일을 (4월경) 한 번씩 서성 왕희지(書聖 王羲之)를 기리는 국제서예전이 개최되고(中國蘭亭書法節) 있습니다.
붓글씨를 우리나라는 서예(書藝), 일본에서는 서도(書道),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이라고 표현합니다.
 
오른 쪽 사진은 서안 비림박물관 제7실에 전시되고 있는 길이 26cm 폭 34cm의 석각입니다,
왕희지는 지금의 산동성 임기(臨沂) 출신으로 서예에서는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경지를 지녀 중국에서는 그를 서성(書聖)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평소에 거위를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글씨 중에는 거위 아(鵝)자가 나올 때 아(我)와 조(鳥)를 아래로 따로따로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나의 거위(我的鵝)라고 할만큼 거위를 무척 사랑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아지(鵝池) 즉 거위 아(鵝)자를 먼저 쓰고 아래로 지(池)자를 쓰려는데 황제의 칙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아(鵝)자 한 자만 쓰고는 지(池)자는 쓰지 못하고 바로 무릎을 끓고 황제의 칙명을 받고 있는 동안 그의 아들 헌지(獻之)가 지(池)자를 마저 써서 아지(鵝池)를 완성하였습니다.
이 아지(鵝池)는 왕희지의 부자가 각각 한 자씩 써서 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으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아버지인 왕희지의 글자 아(鵝)자는 조금 굵고 아들 헌지의 지(池)자는 다소 가는 것도 부자지간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흥시(紹興市)의 난정 원림의 입구에 아지(鵝池)라고 쓴 두 글자의 아지비(鵝池碑)가 있습니다.




 





왕휘지와 아들 왕헌지의 합작품 아지(鵝池가 새겨진 비(鵝池碑)입니다. 거위 아(鵝)자가 좀 다릅니다. 왕휘지가 我 자 아래에다가 鳥자를 붙여 쓴 것입니다. 나의 거위라는 뜻으로 이렇게 쓰곤 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난정(蘭亭)입니다. 절강성의 소흥시(紹興市)에서는 매년 음력 3월3일에 이곳에서 국제서예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2) 왕휘지 두 아들의 글씨 

 

 

 

왼 쪽은 동진(東晉) 시대 중국의 서성 왕희지(書聖 王羲之)의 7남 왕헌지(王獻之)(344~386)의 행서체(行書體) 글씨입니다. 부친 왕희지의 글씨체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만의 새로운 서법을 창조해 보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서안 비림박물관제7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들의 글씨는 사진을 찾은대로 나중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오른 쪽은 왕희지의 3남 왕휘지(王徽之)의  순화각비첩(淳化閣秘帖)에 실린 행초서체(行草書體)의 글씨입니다. 산동성의 낭야임기인(琅야臨沂人 ??~388)이며, 이 작품도 서안 비림박물관제7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글씨는 부친의 글씨를 이어가고 있으나 그의 묵적(墨迹)은 남아 있는 것이 적은 편입니다.

 

(사족) 

왕희지(書聖 王羲之)와 3남 왕휘지((王徽之)의 우리 말 발음이 같습니다. 그러나 중국어 발음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