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정보

하남성의 포청천을 모신 포공사(포公祀)

콩지88 2014. 11. 27. 22:03

 

 

 

 

 

포공사의 입구 입니다

포공사는 대상국사와 용정의 중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포청천 포증(包拯) 좌상 입니다

 

 

 

 

 

아문(衙門) 입니다

 

 

 

 

 

 

 

포공(包公)을 모신 포공사(包公祠)

포공은 포증(包(拯)으로 북송시대인 999~1062 시기의 사람입니다

포증은 청렴강직한 사람으로 불의를 보면 죄를 다스릴 때는 직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상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법대로 벌을 주고, 억울한 백성들 원성을 풀어주는 것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특히 대만에선 1980년대에 TV 드라마 연속극으로 포청천을 만들어 방영하였는데 이 드라마 방영시간에는 거리에 차가 한적할 정도로 인기가 충천했었습니다. 한 마디로 포청천 드라마는 eop만에서 대박이 났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청천의 인기는 대만에 못지 않게 뜨거웠습니다. 시청자의 연령층도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 까지 모두 함께 재미있게 즐기는 TV 연속극이였습니다.

더구나 악인들을 물리치는데 무술이 아주 뛰어 난 한 사나이가 포청천을 위기에서 지켜주는 협객처럼 등장시킴으로써 마치 무협영화를 보듯이 재미에다 재미를 보탰기에 한 편 한 편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족 모두가 즐겼던 TV드라마였습나다. 

 

지금도 포청천의 이름을 대면 몇 장면들은 머리에 떠 오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포청천의 얼굴이 검게 분장되어 있고 이마에 그린 작은 초생달 모양도 처음 보게되어 무척 인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리고 세계의 법관들 복장은 대개 검은 색의 제복을 입습니다. 포청천의 얼굴이 검었다는 기록은 제가 아직 확인을 못했지만,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노리는데 법조계의 상징적인 검은 색깔을 얼굴에 분장시킨 것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이마에 초생달(아니면 그믐달) 모양의 표식은 제가 중국 친구들에게 오른족으로 아니면 왼쪽으로 그린 것 중 어느 것이 맞느냐고 자주 물어봤지만 지금까지 정답을 듣지 못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포공사를 찾는 중국인들은 많습니다. 어느 나라든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더구나 10년이란 긴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철부지 홍위병들의 난동까지 겪어야 했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희생된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좀 많았겠습니까?

이 포공사를 찾아와서 자기가 당한 억울함을 명판관 포청천에게 혼자 마음속으로 하소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벙문객들은 가이드로부터 포공사가 명판관 포청천을 모신 사당이란 말만 듣고도 반갑다는 얼굴 표정들을 짓습니다. 외국에서 자기가 아는 인물이나 눈에 익숙한 풍광을 만나면 매우 반갑듯이 말입니다

번탑(繁塔)

우왕대공원(고취대)와 도보로  10분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977년에 만들어진 붉은 변돌로

샇은 탑입니다.

이 탑은 처음에는 9층으로 세워졌으나 수차례의 홍수 범람 때 토사에 탑의 아래부분인 6층이 지하에 매몰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나라 때는 7층탑, 명나라 말기에는 3층탑이라는 기록물이 있습니다

탑의 벽돌에는 불상들이 하나씩 새겨져 있는데 하나도 모양이 같지를 않습니다. 새겨 진 불상은 모두 108개라고 하는데, 만약 방문시 시간이 나신다면 한 번 108 번뇌라도 지울 겸 108개의 불상을 세어 보면 어떨까요?

지금의 이 탑 놓이는 31.67m인데 청나라 때 3층의 상단에 7단의 탑을 올려 놓아서 더 높아진 것이라고 합니다 

앞의 포스팅에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여기에 전설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용정의 두 호수는 서쪽이 양가호(楊家湖)와 동쪽의 반호(潘湖)인데, 양가장(楊家將)은 충신이어서 양가호의 물이 맑고, 반호는 간신 반인미(潘仁美)의 호수여서 물이 탁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