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전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신해혁명에 희생된 열사들 신위(神位)를 공동르로 모신 곳이 되어 잇습니다
영곡사의 무량전(無梁殿)은 독룡부에서 이곳에 옮겨 온 나무대들보 하나 못 한 개도 사용하지 않고 전석(磚石,벽돌)로만 지은 것이며, 중국에서 현존하는 무량전으로는 가장 큰 것입니다.
무량전의 편액 아래에 신해혁명랍상관(신해혁명 관련의 밀납으로 만든 사람들 상) 편액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영곡사의 무량전은 높이가 22m, 가로 53.8m, 깊이가 37.85m이며 지붕에는 3개의 라마 탑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청 함풍연대에 와서 영곡사는 크게 파손되었으나 벽돌로만 지은 이 무량전만큼은 온전했다고 전해집니다
무량전은 먕대의 건축물이지만
1929년 국민당 정부에서 국민혁명군에 참가하여 희생된 열사들의 제당(祭堂)으로 만들면서
벽에다가 37개의 감비(龕碑)를 붙여서
그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무량전의 외부 모습입니다
중화민국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이 북경에서 서거전에 남긴 글입니다
중화민국의 국가 가사가 걸려 있습니다
"三民主義 吾黨所宗 ~ "
이념보다는 역사 문화에다 더 비중을 둔 것으로 생각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쪽으로 치우친 역사관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떻게 문화혁명 홍위병들의 난동에도 장개석 등 이것들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는지 제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
국민혁명 열사들 신위의 명단 입니다
민단 창립 때 기념 으로 찍은 사진을 밀납으로 만든 것입니다
줗화민국 육군군관학교(육군사관학교) 창립의 인물 중, 왼쪽은 장개석, 오른 쪽은 주은래 입니다
무술유신과 관련, 청 광서제 입니다
무술정변과 관련, 청 서태후 입니다
우우임(于右任)은 중국이나 대만에 서예 작품을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대만에선 감찰원장을 지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경(重慶)박물관에도 우우임의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으며,
대만에선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의 서예집 한 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량전 밖으로 나왔습니다
안개 빗 속을 걸어서 송풍각으로 향했습니다
안개 속에 영곡탑이 보입니다
계화(桂花) 계수나무입니다
어떻게나 크던지 이곳 사람들은 금릉계화왕(金陵桂花王)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송풍각의 이정표를 따라 갔습니다
안개 속을 계속해서 걸어 나갔습니다
이 중국풍이 가득한 송풍각(松風閣)은 설계한 이가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란 점에서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원레 영곡사의 옛 자리에 있던 것이며, 1931년에는 혁명 열사들의 공묘로 만들 때 "혁명기념관"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송풍각(松風閣)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혁명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으나 제가 갔을 때는 문이 잡겨져 있었습니다
송풍각과 영곡사 주변의 돌 담장입니다
동행자가 있었다면 소채관(素菜館)에 들어가서 사찰 음식을 맛 보았을텐데, 혼자 다니다 보면 보고도 못 먹는 이런 일도 있지요 ㅠㅠ
보지전(寶志殿)애 대한 설명입니다
영곡사 주변의 풍경 소개 안내도 입니다
다음은 영곡탑과 영곡사를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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