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北京 Beijing)

걸으면서~ 북경의 모습들(53) 벽운사-금강보좌탑

콩지88 2012. 12. 27. 10:57

 

 

 

 

 

금강보좌탑 오르는 계단 양 옆에 있는  한 쌍의 사자상입니다

 

 

 

금강보좌탑 오르면서 보이는 탑의 아름다움과 위용입니다

 

 

돌 계단을 한참이나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금강보좌탑(金剛寶座塔)은 청 건륭황제 때 세운 것입니다

높이가 34.7m의 거대한 모양인 이 탑은 늠름한 위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탑신에는 불상과 용봉(龍鳳),구름,사자 등이 가득 부조되어 있습니다

 

 

 

 

 

 

 

 

 

 

 

 

 

 

 

 

 

 

 

 

향산공원 정상을 오가는 케이블에 빈 리프트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탑에서 내려다 본 서편 북경 시내의 한 모습입니다

 

 

 

 

 

 

 

 

탑 아래의  소나무 숲과 주변을 둘러 봤습니다

 

 

 

 

탑 아래 주변의 백피송(白皮松)들입니다

 

 

 

 

1925년 손문 선생이 서거하고 지금의 남경 중산릉(中山陵)으로 이장 하기까지 이 벽운사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벽운사를 떠나면서 남긴 손문 선생의 의관은 탑 안에 넣었으므로 손중산의관총(孫中山衣冠塚)이라고 부릅니다

 

 

 

금강보좌탑 아래와 주변엔 백피송(白皮松)들이 많습니다

이 중에 기념수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대만의 총통을 지낸 바 있는 국민당의 주석을 역임했던 연전(連戰,리엔잔)이

2006년4월15일 벽운사에 있는 손문의관총(孫文衣冠塚)을  찾아와서

중화민국의 국부 손중산(國父 孫中山) 선생에게 예를 표하고 양안관계의 화해를 표방한 기념식수을 한 것입니다

 

이 기념 식수의 패말을 보니 옛날 1차와 2차의 국공합작을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국공합작 하면 생각나는 일이 서안(西安)사건입니다

(지금도 화청지(華淸池) 뒷 편에 서안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방 안에 총탄자국이 남아 있음)

 

당시 장개석이  서안사건의 주역 장학향(張學良)에 의해 붙들려 강제 연금을 당했고,

나중에 국민당이 대만으로 가면서 장학량을 붙들어 대만까지 데리고 갔고,

장학량은 몇 년 전 대만에서 죽기까지 연금을 당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장학량은 죽는 그날 까지도 서안 사건에 대하여 일체를 함구한채 무덤까지 안고 갔습니다

 

 

 

석옹중(石翁仲)에 대하여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옹중(翁仲)이란 진히황 때  키가 5장(丈)이나 되는 거인(巨人)이었다고 중국의 사해(辭海, 사전의 하나임)에 나와있습니다.

그런대 나중에는 사람들이 자기 무덤 앞에다 석옹중을 세워두곤 했는데,

금강보좌탑 주변을 정리하던 2005년9월에 우연히 발견된 것입니다

 

저는 금강보좌탑을 둘러보고 내려와서는 탑 아래를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사진에 담아 왔구요 ㅎㅎㅎ

 

 

 

이 한백옥(漢白玉)으로 만든 석상의 높이는 3m이고 무게는 약 5톤이라고 합니다

 

 

 

이 한 쌍의 조각상은 석옹중 옆에 놓여 있습니다

 

 

 

금강보좌탑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더 아름다움과  위용을 자랑하는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