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 운강석굴,면산 카테고리

산서성의 면산(綿山)과 개자추(介子推)

콩지88 2021. 12. 11. 15:47

널판지를 하나씩 꿰어서 만든 흔들 사다리 입니다

오른 쪽은 오르는 길이고 왼쪽은 내려오는 길 입니다

지금도 그냥 걸어 오르기도 쉽지 않은 험한 길 입니다

철판을 징검 다리로 생각하고 올라 가는데, 겨울엔 철판이 미끄러워서 정말 위험할 것 같습니다

개자추 모자의 묘와 비석 입니다

개자추묘(介子推墓)라고 써 있습니다

진 문공은 이를 계기로 이 날은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고 찬 음식을 먹도록 하였으니 한식(寒食)의 유래가 만들어진 것 입니다  중국,대만,홍콩에서는 대개 청명절인 4월 5일을 전후하여 한식 날로 잡고 있습니다

 

한식 날의 유래

 

 진나라의 왕위 다툼이 있던 때, 세자(나중의 문공)는 난을 피해 개자추와 함께 유랑생활을 하였습니다. 고달픈 유랑생활 19년에 수중에는 돈도 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세자의 몸은 무척 쇄약해 있었습니다. 어느날 개자추는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주군에세 먹였습니다. 고기를 맛 있게 먹은 주군이 이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물어 보았고, 개자추는 이리고기라고 답을 했습니다. 개자추의 충정어린 주군 모심에 하늘도 감동을 하였는지 주군의 쇄약했던 몸이 회복되었고 이어서 왕위에도 오르게 되었는데 이 주군이 바로 진의 문공입니다 그러나 이 문공은 아첨꾼들의 논공행상 다툼과 궁중의 호화판 연회에 푹 빠져서 개자추를 잊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문공은 개자추가 만들어 주었던 이리고기 생각이 나서 개자추를 궁궐에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개자추가 문공이 은공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부르지도 않자 크게 실망하고는 면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가서 은둔생활을 할 때 였습니다. 여러 번 개자추를 면산에 가서 개자추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문공은 산에다 불을 질러라, 불을 피해서 개자추가 산을 내려오기를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불길이 사그러들었지만 개자추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문공이 직접 개자추를 찾아 나서고 얼마 후에 버드나무 아래에 개자추와 그 어머니가 함께 불에 타 죽은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에 탄 버드나무에 작은 구멍 속에 쪽지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쪽지에는 피로 쓴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