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주성(荊州城)
호북성 장강 중류에 위치하는 형주시(荊州市)는 시구(市區)의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큰 도시입니다. 1895년에 이미 통상을 위한 개항이 되어 중국에서 가장 일찍 내항(內港)으로서 4대 대외개방항구의 하나입니다.
춘추전국 시대엔 초(楚)나라 땅 이었으며,삼국시대엔 촉,위,동오의 군사요충지로서 서로 차지하려고 했던 곳입니다
동오와 촉이 함께 위나라의 조조 군사를 적벽대전으로 큰 승리를 걷우고 유비가 이 중요한 곡창지대이며 군사요충지의 형주를 빌리는 형식으로 가지고 나서 관우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습니다
관우는 이 형주에 성을 쌓고 큰 꿈을 키우려고 하였으나 동오의 급습에 목숨을 잃었고, 이어서 관우 형의 원수를 갚으려고 출정을 급히 서두르던 장비가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생들의 비보를 접한 유비 또한 원수를 갚으려 동오를 공격했지만 크게 패하고 백제성(白帝城)에 돌아와서 결국은 숨을 거두면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였습니다. 제갈량이 위나라와 최후의 한 판을 겨루기로 하여 출정하면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남긴 글이 유명한 출사표(出師表)입니다
그런즉 이 형주는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큰 주인공들이 무대에서 거의 다 사라지는 비극의 옛 성(古城)이 되었으며, 중국의 역사문화의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형주성(荊州城)은 지금의 장강 중류의 형주시 강능현(江陵縣)에 소재하고 있는데 “유비차형주(劉備借荊州)” 또는 “관우대의실형주(關羽大意失荊州)”라는 말로 대표하고 있습니다
원래 형주성은 토성으로 쌓은 것이었던 것을 남송(南宋)시대부터 벽돌로 쌓기를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성곽은 청나라 때인 1646년에 중건한 것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9m, 두께가 10m 그리고 길이는 9.3km로 동서는 길고 남북은 짧습니다. 규모가 웅장하고 철통같은 성으로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중국 남방의 유일한 고성입니다.
3층의 고성 외곽은 수성(水城),중간은 벽돌로 쌓은 전성(磚城) 그리고 안은 토성(土城)인데, 벽돌로 쌓을 때는 찹쌀 풀을 사용하여 붙였기에 지금까지도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 본 남경의 성곽 역시 찹쌀 풀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형주는 중국어 발음으로 "징저우"가 됩니다
원래 형주성에는 루각이 여러 개 있었으나 지금은 사진에 보이는 루각 하나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파손되어 모두 사라졌습니다
참고로 적벽과 형주성의 지도를 올려 놓았습니다
손권의 오나라는 동오(東吳)로 표시하곤 합니다
낙양 옆의 쉬창(許昌)은 조조가 위의 도읍으로 정하였다가 나중에 낙양으로 옮깁니다
오른 쪽의 남경을 젠예라고 쓴 것은 남경의 옛 이름인 건업(建業 지엔이에)를 말 합니다
팁
형주박물관은 형주시 동편의 강능현 서편에다 1958년에 세웠는데, 이 박물관에서는 전국(戰國)시대의 실크제품, 신석기시대의 옥조각품, 월왕 구천(越王句踐)의 보검(寶劍)이 전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할 볼거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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