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관광, 박물관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박물관 (2)

콩지88 2012. 6. 9. 12:28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박물관"을 2012년6월5일 포스팅 한 바가 있는데 

한국식 짜장면이 만들어진 과정과 한국경제의 발전사와 더불어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 화상들의 짜장면에 대해서 좀 더  소개를 하여드립니다.

 

 

1964년부터 정부는 대대적으로 분식 장려를 했습니다

 

 

외식문화에서 중화요리 특히 짜장면은 한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짜장면 만들기에 필수 재료인 춘장(春醬)은 1948년 사자표 영화장유(永華醬油)라는 산동출신 왕송산이란 사람이 차린 식품회사가 등장한 것이 짜장면 보급의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의 짜장면을 팔던 공화춘을 위시하여 인천의 중화요리 집들입니다

 

 

짜장면 파는 중국집은 극장처럼 청소년입장 불가의 표말은 없습니다

남녀 고등학생들도 자유로이 드나들면서 짜장면 한 그릇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ㅋㅋ

 

 

문짝에는 대련(對聯)으로 또는 한시를 적은 좋은 글씨를 나무 광(匡)으로 정성드려 담은 것도 보입니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거리가 가장 가까운 중국의 지역으로는 산동성의 교주만에 자리잡고 있는 위해(威海),,영성(榮成),유산(乳山),문등(文登),,연대(烟臺 등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들 지역에 대한 정보 입수가 용이해서인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중국투자 수가 제일 많은 곳이 청도를 위시한 이곳 도시 주변인 것은 이상할 것이 없겠습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가장 가까운 인천이나 군산으로 건너와서 삶의 터전을 잡아서 100년의 역사를 지닌 오늘의 인천 차이나타운까지 만들었습니다

서울의 북창동,무교동,서린동 쪽에도 중화요리집들이 많았으나 아직 옛날처럼 활기를 띄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대만의 유명 만두전문점이나 중국의 전문요리점들이 큰 규모로 서울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공화춘(共和春)의 상호가 새겨진 부채입니다

 

 

 

젓가락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중,일 세 나라의  젓가락 비교입니다

 

 

짜장면이나 우동을 먹을 때는 춘장과 어우러지는 양파,대파,단무지는 예나 지금이나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공화춘의 역사입니다

 

 

 

쿨리란 부두에서 일하던 중국인 막노동자를 지칭합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일을 하므로 힘이 들다는 뜻의 쿨리(苦力)가 세계적으로 중국인 막노동자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칼 세 자루만 가지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딜가나 식당을 열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칼로 음식재료를 다루는 솜씨들이 좋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주방에서 요리만드는 일을 많이 합니다

 

 

방문한 여학생들이 짜장면박물관을 구경하다가 전자방영록에다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조리한 간짜장을  조왕신에게 보여주면서  그릇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게 도와준다는 재신(財神)입니다

중국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재신을 집 안이나 사업장에서 아주 정성들여 잘들 모십니다

 

 

부억 하면 조왕신(조王神)이지요?  조는 (火 + 土)의 합성어입니다

 

 

 

 

 

 

 어느 나라든 밀가루 반죽은 그 나라 음식 맛의 기본동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짜장면박물관의 입구에서 도움을 주는 예쁜 관광안내양입니다

 

 

짜장면박물관은 어느 쪽으로 가든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짜장면과 함께 살펴 본 연대별 역사입니다

 

 

 

인천화교소학교가 1901년에 세워졌습니다

손문이 이끈 신해혁명(辛亥革命)은 1911년10월10일(대만에선 쌍십절이 국경일,1월1일이 건국기념일),

다음 해에 중화민국이 수립되었는데

공화춘이 이 해에 개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공화춘은 100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하면서

짜장면의 대부라고 말하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