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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남의 정성공과 츠칸러우(赤嵌樓)

콩지88 2015. 7. 9. 07:54

 

 

며칠 전에 sky travel 채널에서 대만의 4번째 큰 도시인 고도(古都) 대남시(臺南市 타이난)를 소개했습니다

이 프로는 일본 NHK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대만을 51년간이나 식민지로 다루어서인지 대남시의 옛 골목까지 들어가서 이들의 문화와 전통까지도 담아내는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도인 측면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대남시의 현재 밝은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대남시가 마치 후지고 후진 시골도시처럼 보였다는 점을 미리 여기서 제가 언급하고 정성공과 관련된 대만의 역사를 들여다 보기로 합니다

 

소개되는 역사 이야기의 연대를 확인하는 작업을 꽤나 오래 해야 했기에 한 동안 포스팅을 하지 못했음을 밝힙니다

 

 

 

대만의 민족영웅 정성공(鄭成功 1624~1662)

    

정성공은 복건성 천주(泉州) 출신으로 일본 히라도(平戶) 태생이었는데 어머니는 일본 사무라이의 딸로 그

 

리고 아버지는 해적 출신으로 이름은 정지룡(鄭芝龍)이었습니다 일본 히라도에는 지금도 정성공의 기념비

 

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정성공은 유년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7세 때 복건성으로 왔습니다

 

 

청나라가 세워지고 청군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향하자 융무제는 난을 피해 복건성의 복주(福州)로 와서

 

남명을 세웠는데 이 때 정씨 일가가 융무제가 세운 남명을 지키는 버팀록 역할을 했습니다

 

 

청군이 절강성을 넘어 복건성을 향해 밀려들자 복건성의 주력부대는 선하령(선하령(복건성 절강성과의 경

 

계지역)에서 대원수가 숙부, 부원수가 정성공의 종형이 항전태세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성공의 아버지는 반역자와 내통하고 선하령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고 자신은 청군에 투항하였습니

 

다. 그리고는 북경으로 갔습니다.

 

 

정성공은 반청 활동을 위한 10여 년의 준비를 하고 북경 진격에 앞 서서 남경부터 공략합니다. 장강을 따

 

라서 남경 부근까지 승승장구하였으나 막상 남경의 전투에서는 대패하고 복건성 아모이(厦門 하문)로 철수

 

 합니다 남명정권의 마지막 황제인 영력제에게 사자를 보내어 왕작(王爵)을 사퇴한다고 알렸습니다 즉 그

 

간에 연평군왕(延平君王)에서 조왕(潮王)으로 격상된 작위를 스스로 박탈하고 이 후로는 오로지 초토대장

 

군이란 칭호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남경전투에서 대패한 정성공은 육지에서 버틸곳은 아모이 한 곳 뿐이었는데, 이곳은 막강한 청의 군사에

 

 대향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발판으로 찾은 곳이 대만이었습니다

 

 

당시 대만은 네델란드의 식민지였습니다. 정성공이 태어난 해인 1624년이 네델란드가 대만의 남부 항구도

 

시인 타이난(臺南)에다 적감성(赤嵌城 홍모성(紅毛城)이라고도 부름)을 구축하고 군대를 파견해놓고 있었

 

습니다

 

 

1661년4월 정성공은 350척의 군선에 2만5천 명의 병사들을 싣고

 

녹이문항(鹿耳門港 지금의 대남 안평항(安平港) 북쪽으로 해서 적감성에 진격했습니다.

 

네델란드 측에서는 녹이문항의 항로가 좁아서 대규모의 군선들이 몰려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가 정성공의

 

 군대가 막상 상륙을 하자 총독에게 구원군을 긴급 요청했는데 구원군이 오기도 전에 적감성은 함락되었습

 

니다

 

이어서 정성공의 군사는 다음 목표인 대만성(臺灣城 지금의 안평)을 향했습니다

네델란드의 대만 총독은 결사적으로 버티기에 나섰지만 8개 월이란 긴 전투에서 1600명의 병사는 절반으

 

줄었고 식량도 바닥이 나게 되자 총독은 드디어 백기를 들고 1662년2월1일 대만을 떠나면서 38년이란

 

네델란드의 식민지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정성공이 대만을 접수한 지 일 년이 채 못된 1662년에 병사하니 그의 나이 불과 39세 였습니다.

 

 

정성공이 병사한 후 아들(鄭經)이 19년 그리고 손자 즉 정경의 아들인 정극상(鄭克塽)이 3년동안 대만을

 

 다스렸으나 1683년 청나라 군대가 출정하자 투항하였습니다. 이로써 정성공 일가의 40년에 걸친 반청 항

 

쟁은 종지부를 찍고 대만은 청의 관할에 편입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성공의 배가 훨씬 작았다는 표현은 배의 크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작은 배로 항해를 녹이문항과 같은 좁은 수로를 자유자재로 했기 때문에 네델란드 측의 판단을 뒤엎고

 

성공이 승리를 이끌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정성공의 군사와 네델란드 병사들이 적감루와 안평에서 대치하면서 싸운 기간은 모두 8개월 이었습니다

 

 

 

 

 

일본 평호(히라도 平戶)의 사무라이 집 출신인 정성공의 모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성공은 민족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대남시에는 성공대학(成功大學)이 있는데 공과대학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이 츠칸러우는 대남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주변에 정성공을 모신 정성공묘(鄭成

 

廟)도 있습니다

 

 

 

 

츠칸러우의 전경 입니다

 

원래는 네델란드 식의 건축물이 었지만 정성공이 중국식으로 바꾸었고, 지진으로 훼손된 것을 청나라 때인

 

광서(光緖)5년인 1879년에 다시 지었고 크기도 확장을 했습니다

 

 

 

 

 

타이뻬이의 MTL 종착역인 담수(淡水)에도 홍모성(紅毛城)이 있는데, 이것은 처음엔 스페인이 무역을 위해

 

설치한 건축물인데, 네델란드에 의해 쫓겨나고 그 후는 정성공에 의해 네델란드도 축출 되었습니다

 

 

아편전쟁 후 영국이 이곳에 영사관을 설치했었고, 나중엔 일본이 접수해서 사용하다가 1945년 대만광복시

 

 대만인에게 돌아온  여러 시대적인 역사가 교차하는 건축물 입니다

 

 

 

 

이 타이뻬이의 홍모성에 오르면 멀리 보이는 섬에 저녁무렵이면 아름다운 노을에 멋진 풍광을 연출하기

 

에  대만 8경의 하나로 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