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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 왕소군(落雁 王昭君)을

콩지88 2012. 2. 8. 08:28

 

 

왕소군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알씨(선우의 비)로, 본래 현재의 호북성  출신으로 장(嬙)이란 이름을 가진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성을 왕, 자를 소군이라고 하며 왕소군은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고대 중국 4대 미인의 한 사람으로 꼽는다.

 

 

 

왕소군은 선우를 따라 흉노의 땅으로 떠나던 날 늘 지니고 다니던 비파를 타니 날아가던 기러기들이

비파소리를 듣고 절세가인 왕소군의 미모에 넋을 읽호 날개짓을 잊어먹어 그만 땅에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위 사진은 왕소군의 미모를 담은 중국 고대 4대 미인주 중의 하나입니다

 

 

술 병 뒷 면에는 낙안(落雁)에 대한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왕소군이 선우와 함께 낙타의 방울 소리를 들으며 황량한 흉노의 땅으로 가는 모습입니다

이 둘이서 함께 떠나는 모습을 대개는 왕소군출새(出塞)라고 말합니다

 

 

비파를 타는 왕소군의 아름다운 자태입니다.

 

위 두 장의 기념우표는 내몽고 호화호특에 있는 왕소군릉의 기념품가게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원(元)대 유명한 희곡의 하나인 마치원(馬致遠)의 한궁추(漢宮秋)는 왕소군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고 있습니다. 궁녀들의 모습을 미리미리 그림으로 그려두었다가 황제가 심심할 때 볼 수 있게 하던 모연수란 궁중 화가는 탐욕이 많아서 궁녀들로부터 뇌물을 많이 받으면 예쁘게 그림을 잘 그려주고, 그렇지 않고 왕소군처럼 돈이 없어서 뇌물을 받치지 않으면 모연수 화가는 심통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모연수 화공은 왕소군의 미모를 그대로 그리지 않았을뿐 아니라 고의적으로 얼굴에다 검은 큰 점까지 만들어 흠집을 냈습니다. 그래서 당시 황제인 원제의 눈에 들지 못하였다가 나중에 흉노의 선우가 원제를 찾아와서 연회장에서 많은 궁녀중에서 왕소군을 골라서 흉노(지금의 내몽고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好特)) 땅으로 데리고 가 비로 삼겠다고 요청을 했을 때 무심코 그러라고 선뜻 대답을 했습니다. 우선 원제는 많은 공주들 중에서 누구 하나를 골라줄 셈이었으나 선우가 공주가 아니라 궁녀라도 좋다고 했을 때는 원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그러나 선우와 함께 떠나가는 왕소군의 절세가인의 미모를 처음 보고는 그만 속으로 통탄을 하면서 몽골로 보내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모연수란 화가는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의 종말이 어찌되었을지는 不問可知이지요.

 

왕소군의 릉에서 春來不似春을 음미하다

 

1997년1월 초에 내몽고자치구정부의 초청으로 자치구의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好特)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면 30분이면 후허하오터에 도착하는 시간적으로는 무척 가까운 거리이지만, 철로나 장거리버스를 타게되면 하루 이상이 걸릴겁니다. 기차나 버스의 출발시간이 척척 내 필요한 시간에 떠나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장거리 2층 버스엔 명색이 침대석도 있지만 아마 선뜻 이런 2층의 고급(?)버스를 타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입니다. 좁은 닫혀진 공간 안에서 냄새도 지독한 담배를 여기저기서 무식하게 피워대면 호흡기가 약한 분은 거의 질식할 정도이지요. 그래도 젊어서는 사서 고생도 기꺼이 하겠다는 각오라면 경험삼아(?) 한 번 도전해보시지요 ㅎㅎ

 

중국에서의 배낭여행에 꿈을 가진 분은 인터넷 상에 올려지는 글에 현혹되지 않기를 충고해 드립니다. 더구나 한비야의 환상적인 중국여행기엔 허구성과 과장된 표현이 너무 많으니 조심해서 읽기를 일러드립니다. 저처럼 사실대로만 중국여행기를 쓰면 재미가 없긴 하겠지만 글쓰는 이는 자기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후허하오터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왕소군의 릉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니 미리 왕소군을 만나고 호텔로 가도 되겠습니다. 제가 묵었던 호텔 이름 역시 王昭君大飯店이었습니다. 왕소군의 이름은 내몽고에 가면 여기저기에 쉽게 눈에 띕니다.

근래의 왕소군릉은 제가 10여 년 전에 갔을 때와는 엄청 많이 변한 모습입니다.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입구에 만들어 놓은 선우와 왕소군이 나란히 말타고 있는 동상과 야산 같은 릉(陵)입니다. 릉 꼭대기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황하의 상류가 보이고 주변 시내도 보입니다. 감숙성에서 발원하여 청해성을 지나 내몽고를 통과하는 황하는 수량도 풍부하게 도도히 흘러갑니다. 산서성에서 호구폭포(壺口瀑布)를 만들기도 하면서 산동성 제남(齊南)을 지나 천진(天津)까지 가서 황해로 빠지는 것이 황하는 총 길이 5464km가 넘습니다.

왕소군의 릉은 청총(靑塚)이라고 부르는데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글 쓰는 이들의 멋진 표현이구요.

왕소군이 황량한 흉노의 땅에 들어섰을 때는 감회가 남달랐을 겁니다.

시인들이 두 줄의 五言絶句로 왕소군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에 와보니 화초도 안보이네

       봄이 왔다는데도 봄 같지가 않구나 !

 

우리나라 정치한다는 분들이 공잘 입에서 모든 것 거두절미하고 춘래불사춘은 잘도 읊조립니다 ㅋㅋ

 

제가 구입한 왕소군의 우표 두 장을 사진에 담아서 여기에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대만에서 만든 중국의 고대 미인 4명의 그림을 도자기에 담은 美人酒(술은 金門島에서 생산하는 53도짜리 高糧酒) 중에서 왕소군의 것을 덤으로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