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서성 서안(西安), 화산(華山)

섬서성, 서안,비림(碑林)박물관 4-1

콩지88 2011. 8. 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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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기(섬서성,서안,비림(碑林)박물관) 4-1

 

 

비림 입구의 조벽입니다. 지붕이 웅장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이제부터는 비림박물관을 보러 갑니다.

 

 


서안 시내도  차가 많이 붐비고 있습니다.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자주 보입니다.

 

 

 

도로 표지판이 보입니다. 비림(碑林)이라고 쓴 글자가 아래 왼쪽으로 작게 보이고 있는데, 표지판에다 갈색으로 쓰는 것은 세계 공통이며 유명한  유적지나 풍경지가 있다는 것이니 쉽게 눈에 띕니다.

 

 

 

비림의 바깥 벽에 중국의 유명 시(詩)나 역사인물,고사(故事)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시민의 문화의식을 고양시키고 있습니다. 

 

 

드디어 입구 돌 다리까지 왔습니다

 


비림의 입구인데. 가운데 문 이름이 문묘(文廟)입니다.

 


문묘를 통과하면 보이는 조벽인데 옆으로 찍었으며, 맨 위 첫 장의 그림은 안에 들어와서 정면으로 찍은 것입니다.

 "서안비림,서법중국"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예(書藝),일본은 서도(書道),중국은 서법(書法)이라고 서로 글자를 달리 표현합니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각루를 보면서 한 장 찍었습니다.

 

 

이 중간의 문을 통과하면 비림의 정원이며 비림의 본 건물이 보입니다

 

 

 

 

오른 편으로 큰 북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려가서 구경을 합니다.그저 겉 모양만 구경합니다.

 

 

왼편으로 있는 이 건물 안에는 엄청 많은 비(碑)들이 있는데 관광객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림의 정면에 섰습니다

 

 

비림박물관의 본관입구가 보입니다. 비림의 비(碑)자에 위 점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청대 아편관리를 위해 광주지역으로 흠차대신으로 간 임칙서의 글씨입니다. 임칙서는 몰수한 시중의 아편들을 대중 앞에 쌓아 놓고 불을 질렀습니다. 나중에 영국이 이것을 구실로 아편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영국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청나라는 엄청난 배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임을 지고 우루무치 한직으로 가게 된 임칙서는  빠트려 놓은 점 하나는 나중에 황제가 다시 불러주면 그때 와서 점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이겠지요. 


 

 
비림박물관 안에는 한대에서 청대(기원전 206년~1911년)까지 각 연대의 석비들이 2,000개 정도 소장되어 있는데 1,000개 정도를 전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붐비는 사람들 틍 사이에서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고작 30~40개 정도인것 같습니다.  
 

 

 서안 대안탑 028북.jpg

 

 


박물관 제4실 서쪽 3열에서 전시되고있는 그림인데 여러가지 뜻을 담아놓고 있습니다.

청대의 마덕소(馬德昭 1862~1874년)의 글씨를 새긴 것입니다. 이 그림같은 글씨 속에는 여러 상징적인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유명한 서예가인 안진경(顔眞卿) 집안에 대한 소개 비석입니다.

 

 



이 비석은 2007년8월에 서울 나들이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나라 때(635년)에 만든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입니다. 대진은 동로마이며 경교는 시리아인 Nestorian이 만든 기독교의 한 파입니다. 

 

 

 

중국 초서(草書)의 대가 장욱(張旭, 618~907년)이 쓴 초서체의  천자문(千字文)입니다. 그의 별명은 광초(狂草)입니다.

 

그는 이태백과 술 한잔 거나하게 마시면 이태백이 중얼거리는 시를 그 자리에서 초서체로 받아 썼다는데 다음 날 무엇을 섰는지 본인도 한 동안 못알아보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술에서 깨어나고 일주일 정도 열심히 연구검토를 하고 나서야 자기가 쓴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확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ㅋㅋ

비림이 유명해진 것은 당 현종 이융기(李隆基)가 친필로 쓴 석대효경(石臺孝經)이 있어서입니다. 

효경(孝經)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효(孝)의 사상을  바르게 전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인쇄술의 미흡으로 유학자들은 대개 초사본(抄寫本)으로 공부를 하였는데  초사하는 과정에서 오자나 탈자가 자주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석대효경(石臺孝經)을  원본으로 삼아 공부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효경뿐 아니라 사서오경 등 13경 모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석대효경만 보았습니다.  이 효경을 쓴 비석 아래에 받침을 놓았기 때문에 석대효경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워낙 좁은 공간에서 붐비다 보니 세로로 긴 효경을 사진에 담지 못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