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강삼협 쿠르즈 여행 장비묘는 두 개입니다
장비묘(張飛墓)는 두 개
사천성의 운양(雲陽)과 랑주(閬中) 두 곳에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장비의 이런 비극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합니다
“신재랑중, 두재운양(身在閬中, 頭在雲陽)‘
몸운 랑중에 두고 머리는 운양에 있구나
지금도 장비의 묘는 운양과 랑중 두 곳에 따로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운양 장비묘는 청나라 때 지은 것입니다
장환후묘의 패말이 입구의 계단 왼편에 보입니다
중국인들은 잡비가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장강을 지나기 전에는 반드시 이 장비묘에 둘러서 제를 올려야 뱃길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소 믿습니다
운양시(雲陽市)는 성도(成都)와는 동북 약 350km, 남중시(南充市)와는 북쪽 약 150km의 거리에 있는 2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역사문화 도시의 하나 입니다
장강 쿠르즈 여행의 선박 하나가 부두에 정박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선박처럼 큰 배들이 아주 많습니다, 강에서 이런 호화선박들이 다닌다는 것에 놀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중국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장강삼협 쿠르즈 여행은 예약시 선작의 크기,시설,중간에 정박하는 관광지(여행사 마다 조금씩 다름) 그리고 배싻과 옵션 비용 등을 눈여겨 잘 봐야 합니다
이백은 이곳을 떠나면서 첩첩산을 만중산(萬重山)이라 하였던가?
장비는 낭중(閬中) 성에서 7년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관우가 오나라와 싸우다가 죽었다(221년)는 비보를 접하자 지금의 하북성 탁주(涿州 북경에서 남쪽으로 약 40km거리)에서 맺은 도원결의의 삼형제 중 막내인 장비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성미가 급한데다가 호랑이 눈을 가진 장비는 관우 형이 죽었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접한하자 장비는 부하들에게 3일 내로 모두 흰 옷을 준비하고 동오로 진격하여 관우 형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엄명을 내리고, 만약 명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참수하겠다고 말 했습니다
범강(范疆)과 장달(張達)이란 휘하의 두 부장은 장비의 명령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참(斬)이란 문책을 받을 것이 두려워 장비가 술에 잔뜩 취하여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장비를 죽였습니다 . 둘은 장비의 자른 목을 싸들고 동오 쪽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동오와 촉은 지금 화해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난감 해졌습니다
장비의 목을 동오에 가져가면 이 공적으로 후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둘의 모가지 유지가 더 위태로워진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길에서 둘은 장비의 머리를 장강에다 버리고 각자 제 갈 길로 도주해버렸습니다
다행히 부근의 어부가 간밤의 꿈에 본대로 강에서 장비의 머리를 발견하고 수습하여 강가에 묻어 주었습니다
백제성에서 관우에 이어 남은 아우 장비마저 비명에 갔다는 비보에 애통함과 울분 속에 장비의 몸을 낭중(閬中) 성에다가 안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장비를 장환후(張桓후)라고 추서를 했습니다
장비묘는 대문ㅡ패방(牌坊)과 대전,후전,장비묘 등이 있으며, 후전에는 한(漢)장환후신도비와 장비의 소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운양의 장비묘는 17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녔는데 청나라 때인 1870년에 크게 확장을 했지만 수차레의 물난리로 많이 파손된 것을 지금의 모습으로 1400여 평의 건축물로 만든 것입니다
사당 안에는 비석도 많은데 이 중에 악비(岳飛)의 초서체로 쓴 전후 출사표,황정견(黃庭堅)의 유란부(幽蘭賦)와 소동파의 전후 적벽부(赤壁賦) 등의 묵적들을 만나 볼 수 있으니 서예와 비석 글씨에 관심 있는 분에게는 놓치면 아까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