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시내의 진(秦)2세 황제릉(陵)
진2세릉의 역사에 관한 글 입니다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영토 입니다
진2세의 연도별 소개 글입니다
진시황제의 둘째 아들인 진시황2세 호해묘(胡亥墓) 비석입니다
진2세황제릉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릉은 서안의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언덕 같은 것이 릉 입니다
사천성의 성도(成都 청뚜)에 있는 유비(劉備) 릉과 비슷하지만 이곳 동산 같은 릉의 규모가 작습니다
진2세릉의 주변에는 여러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병마용의 마차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진시황2세릉
서안 시내에 있는 진시황2세 릉(陵)을 찾았습니다
전시실의 방에는 진시황제의 장남과 차남 두 아들의 그림과 환관 이사(李斯)와 조고(趙高)의 그림도 있습니다.
기원전 201년 진시황제는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순시하는 도중에 죽었는데,죽을 무렵 유언을 남기기를 총명했던 장남 부소(扶蘇)에게 자리를 물려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환관의 조작으로 유서 내용이 방탕한 설품의 동생 호해(胡亥)에게 자리를 물려 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역사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환관이 독똑한 황제를 모시는 것 보다야 다소 모자라면서 방탕한 성품의 황제를 옆에서 모시는 것이 편할 것이고 자기의 권력행사도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사는 조고에게 무고를 당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여하간 소수민족의 통합과 국토통일을 이룩했던 진(秦)나라는 15년(기원전 221~206년)만에 망하고 맙니다 진시황제는 재위기간이 12년이었으며, 진시황 2세는 조고의 권유로 자결을 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嬰)이 자리에 올랐지만 46일 만에 유방(劉邦,나중에 漢나라의 高祖가 됨) 군사의 진군에 투항함으로써 진의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