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보는 남경의 이모저모(손문의 중산릉 2-1) 4
중산릉(中山陵)
중산릉은 남경의 동쪽 교외의 종산(鍾山) 남 기슭에 8만 여 m2의 면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산 능묘는 1926년1월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29년6월에 완공하였고,
손문이 1925년3월12일 북경에서 서거하여 유체를 남경으로 옮기기 까지 북경의 향산에 있는 벽운사(碧雲寺)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벽운사에는 지금도 손문의 기념관이 있으며, 제 블로그의 북경편에서 소개해 놓았습니다.
손문의 중산기념관은 중국의 상해,광주 등 여러 도시에다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만의 타이뻬이엔 장개석 총통 재임시 국부기념관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중산릉을 평면으로 보면 종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환기민중(喚起民衆)”의 뜻을 표방한 것입니다.
이 중산릉은 중국인 여언직(呂彦直)의 설계로 만들어졌는데, 패방,묘도,릉문,대평대(牌坊,墓道,陵門, 大平臺)그리고 제당과 묘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패방의 정면은 넓은 반 달 모양의 광장이 있는데 광장 남쪽으로 손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중산릉을 가는 길에서 송미령(宋美齡,장개석 총통의 부인) 별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타고 가던 택시를 잠시 길 옆에다 세워 놓고 지금은 개방하지 않는 이 별장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중산릉과 영곡사를 오가는 셔틀 전동차가 앞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의 가로수들이 우람하고 무성하여 시내공기와는 확연히 다름을 느낍니다
남경시내에도 이 가로수가 잇지만 중산릉 가는 길에도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 가로수의 밑둥에서 세 가지가 갈라져서 자라는 것은 손문의 삼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남경 사람들은 말하곤 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
광장에서 릉묘까지 가는 700여 미터의 긴 길입니다
패방(牌坊) 입니다. "박애(博愛)"라는 두 글자가 쓰여져 있습니다
중산릉을 찾은 사람들은 패방 앞의 광장에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증산릉을 찾은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날씨가 좋고 연휴라도 만나면 이 증산릉은 인산인해로 붐빈다고 합니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제당입니다
제당은 궁전식 건축을 모방하였는데 세 개의 문 위에는 민족,민생,민권(民族,民生,民權 즉 삼민주의(三民主義)의 말머리 글자) 글자가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지은 릉문(陵門)입니다
릉문에는 손문이 직접 쓴 “천하위공(天下爲公)”의 네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저도 패방아래에서 인증 샷 한 장 남겼습니다
이 증산릉은 2010.11.12 부터 무료 관람으로 되었습니다
그 이전엔 입장료만 40원/인 이엇던 것 같습니다
비정(碑亭)입니다
변의 길이가 12m이고 높이가 17m의 남색 기와를 얹은 화강암으로 지은 것입니다
비정 안에 만들어진 비에는 삼행으로 금색으로 해서체로 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글씨는 국민당의 원로였던 담연개(潭延(門+豈))의 것이라고 소개해 놓았습니다
묘도 입구에서 묘실까지는 700여 미터의 거리인데 오름의 계단이 392개가 있습니다. 남경사람들은 이 392개의 계단 숫자는 당시 중국 전체의 인구가 3억9,200만 명을 상징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