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보는~(109) 원명원(圓明園) 배 타고 둘러보기 4
원명원(圓明園)
원명원은 원명,장춘,만춘(圓明,長春,萬春) 세 원의 총칭인데,
청 강희황제 때 시작하여 옹정황제,건륭황제 등 6대 황제에 걸쳐 333ha(346만m2)의 부지면적(길이가 10여 km)에
150년의 오랜 세월 동안 조성한 곳입니다.
부지면적의 1/3이 인공호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명원 안에는 전후에 인공호수가 만들어져 있으며, 호수 주변의 길을 따라 조성된 대규모의 연꽃단지는 연꽃이 피는 계절이면 정말 환상적인 경관이 연출되는 곳입니다.
수 백 개의 누(樓)와 전,각,대,정자(殿,閣,臺,亭) 등이 만들어졌고, 호수와 어울려 복해(福海)로 불려지며, 원(園) 안에 원(園)을 만들 때는 항주 서호(西湖)의 10경(十景)과 해녕(海寧市)의 안란원(安瀾園)과 (해녕시는 영파(寧坡) 가까이에 있으며, 바다의 조류 때 만들어지는 파도로 유명), 소주(蘇州)의 사자림(獅子林, 졸정원,유원,망사원 등과 함께 유명한 정원) 등의 가장 뛰어 난 곳만 모방하여 만들면서 건축면적만 16만m2입니다. 이 중에 서양식의 건축물로는 베르사이유궁전을 본 따서 화려하게 지어놓았던 바로크 스타일의 서양루(西洋樓) 등이 있는데, 한 마디로 원명원은 북경 제2의 황궁이었습니다.
1860년 10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침입하여 안에 소장한 보물을 무한정 약탈해 간 것뿐만 아니라 약탈을 은폐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습니다. 불길은 밤낮 이틀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00년에는 8개국의 연합군이 또 침입하여 소장된 보물을 싹쓸이를 해감으로써 원명원은 완전히 폐허로 변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전 주은래총리의 지시에 따라서 폐허의 맨 땅에 조림,조경을 하면서 정리가 많이 되었고 1988년부터 대외에 개방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관되어 있는 원명원 40경(景)의 문헌에 따라서 원명원을 원상대로 복원하려는 구상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복원된 그 날엔 저도 또 한 번 원명원을 찾아오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 합니다
감벽정(鑑碧亭)은 1811년에 (청 가경16년) 건축면적 256m2로 세워졌으나, 두 번의 열강 연합군의 원명원 침입 때 약탈당하고 불살라 질 때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의 이 감벽정은 1993년에 원래의 자리에다 다시 지었다는 내용의 안내 글입니다
베를 타기 위해 물가를 따라 걸어갑니다
원래 원명원에는 200여 개의 다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취형의 이 돌다리 하나가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남았다고 합니다.
제 사진에 담긴 다른 다리들은 나중에 다시 만든 것들입니다
칭칭 늘어진 수양버들과 여러 모양의 돌다리들을 보면서 걷는 제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드디어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표를 매표소에 가서 또 따로 사야 배를 탈 수 있습니다
배는 구경하는 작은 유람선이므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연꽃이 피는 계절에 여기서 뱃놀이 하면 정말 멋질것이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한 마디로 판타스틱 !
배를 타지 않고 걷는 사람들은 여유있게 여기저기를 구경합니다
저는 나중에 되돌아 올 때 구경하게 될 것입니다
원명원의 유일한 원형대로 남은 다리를 다시 다른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유일하게 지금까지 보존되어오고 있는 다리라고 잔교(殘橋)의 소개 판에 쓰여 있습니다
배 타고 지나가면서 가까이 온 다리의 돌들을 담았습니다
제 앞에 지나가는 작은 유람선 입니다
원명원에선 작은 유람선만 다니는 이유를 알만 했습니다
무수한 다리 아래를 유람선이 지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분수대에서 물을 꽃 모양으로 뿜습니다
작은 유람선은 연꽃 단지와 옛 원명원의 흔적이 보이는 쪽으로 가까이 가곤 합니다
걷는 길은 완만합니다
이렇게 배 타고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함께 즐기는 것도 멋이라면 멋이겠습니다
원명원의 면적이 333ha인데 이 중 1/3이 물이라고 했습니다
믈가에 지어 놓았던 건물들은 운치가 있고 무척 화려했을 것이라고 샹상을 해봅니다
중국의 베르사이유 궁전이 있었던 서양루(西洋樓) 쪽에서 배는 멈추고 승객들은 하선을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