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보는 북경의 모습들(73) 고궁(자금성)을 소개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경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고궁인 자금성을 꼽습니다
그런대 자금성에 다녀 와서 글과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시는 내용 중에는 잘 못 이해하는 부분이 여러 군데에 발견됩니다
자금성 안에는 자객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것은 그 대표적 예입니다. 제 사진에서는 어화원을 대표로 여기 저기에 나무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자금성을 간략하게 소개한 이 글은 읽을 때는 좀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다음에 자금성을 가시기 전에 읽어보고 가면 도움이 되리라고 저는 믿으면서 감히 이 자리에 올려드립니다
우
자금성 안에 들어가려면 정문격인 오문(午門) 앞의 천안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자금성(紫禁城)
고궁(故宮)은 중국에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경의 자금성(옛날엔 이렇게 불렀음, 영어로는 Forbidden Garden)을 말하며, 지금은 고궁박물원의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요령성의 성도인 심양(瀋陽,심의 간체자는 沈임, 선양)에 있습니다.
고궁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드립니다
고궁 짓기는 명 영락(永樂)4년(1406년)부터 명 영락18년(1420년)까지 기본적인 건축공사가 끝났고, 명 성조(成祖) 때에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 공사를 했습니다.
고궁의 부지면적은 72만m2, 이 중에 9,000여 칸의 건축물 면적은 약 15만 m2입니다
명,청 양대의 황실이었으며 모두 24명의 황제가 전국을 통치했습니다.
1911년 손중산(孫文)의 민주혁명(대만에선 辛亥革命이라고 함)에 의해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청나라가 무너지자 2000년의 장구한 중국 봉건군주제기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신중국 수립후 수 차례의 보수작업을 거쳐오고 있으며, 지금은 국가박물원 즉 고궁박물원이 되어 있습니다.
천안문의 왼편에 있는 국가박물관과의 차이라면, 고궁박물원 즉 국가박물원의 전시품은 황실에서 소유했던 소장품들이고 국가박물관의 전시품은 역사와 관련된 국가 소유의 것들이란 것이 제 개인 견해입니다. 대만 대북(타이뻬이)에는 고궁박물원이 있고 역사박물관이 따로 있습니다. 중국도 몇 년 전까지는 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이 따로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지금의 국가박물관으로 명칭도 바꾸었습니다
자금성의 주위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담장 아래엔 폭 52m의 호성하(護城河)가 흐르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해자(해자)라고 부릅니다.
자금성의 네 모서리에는 3층의 수려한 각루(角樓)가 각각 세워져 있습니다.
북쪽에 있는 산은 만세산(萬歲山)이었으나 청대에 경산(景山)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은 경산공원이 되어 있습니다
이 황궁은 남경의 궁전체제와 “좌조우사,전조후시(左祖右社,前朝後市)”의 전통관례에 따라 설계하고 지어 놓은 것으로서 제조태묘(祭祖太廟) (지금의 노동인민문화궁)와 제신사직(祭神社稷)(지금의 중산공원)은 우리나라 서울의 종묘와 사직단 관람처럼 시간이 나면 산책을 겸헤서 한 번 둘러볼만 합니다
궁전은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제도에 따라서 외조(外朝)와 내정(內廷)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전조(前朝)에는 태화,중화,보화(太和,中和,保和) 3대 전(殿)이 중심이 되고 양 날개인 문화전(文華殿)과 무영전(武英殿)이 있는데 여기서 큰 행사를 열거나 황제가 군신들을 모아놓고 권력행사를 하던 곳입니다.
내정(內廷)에는 3대 궁인 건청궁(건청궁),교태전(교태전),곤령궁(곤령궁)과 동서육궁(동소육궁)이 있는데, 황제의 일상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며, 후비(후비)와 황실의 자손들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자금성을 가이드가 안내해 주는 패키지 관광이 아니어서 개별적으로 둘러보려면 약간의 요령이 필요합니다. 해설기 대여처에서 한국어 해설이녹음된 기기를 빌려서 안내하는대로 걸으면서 들으면서 보는 방법이 하나이고, 미리 볼 행선지를 종이에 그려 놓고 순서대로 찾아가면서 보는 방법입니다. 후자의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립니다
고궁의 정문은 남문(南門)이며 오문(午門)이라고 합니다. 남문에서 입장하여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으로 나갑니다.
물론 동에는 동화문(東華門),서에는 서화문(西華門)이 있지만 권할 코스가 아닙니다. 또한
북쪽에서 남문으로 거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처음 방문하는 분은 역시 정상적으로 남문에서 입장하는 것이 정도이겠습니다.
오문(午門)은 고궁의 정문이며,명 영락18년(1420년)에 만들고, 청대에 수리를 한 높이 36.6m의 건축물입니다. 가운데 문은 황제만이 출입합니다. 황후는 결혼 때 한 번 이용하며, 전시(殿試)에 합격한 3명의 壯元,榜眼,探花에게도 각각 한 번만 이용토록 하고 이 외에는 닫아놓고 있었습니다
태화문과 태화전(太和殿)
오문을 통과하고 태화전에 가면서 지나게 되는 문인데 영락18년에 만들었고, 청대 강희34년(1695년)에 높이 35.05m로 중건하였습니다. 문 앞에 명대에 만든 청동 사자 한 쌍이 있습니다. 대전 앞과 뒤로는 3층의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편 민가 건축에선 태화전의 높이를 절대로 초과해선 안된다는 기준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
둘 다 태화전과 함께 각각 3대 전의 하나입니다.
보화전의 뒤편에는 놓치기 쉬운 것 하나가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중국에서 가장 큰 용이 조각된 돌로서 길이가 17m,폭이 3m, 두께가 1,7m이고 무게가 무려 200여 에 달합니다
이 보화전은 청 건륭황제 후반기부터 친히 출시를 하여 인재를 뽑았기 때문에 이곳을 “전시(殿試)”라고도 부릅니다
내동로와 외동로(內,外東路)
보화전을 나서면 작은 광장을 만납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후정(後廷)”입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내동로의 청동기관,도자관과 경태람관(景泰藍館)을 만납니다. 더 동쪽 외동로쪽으로 나가면 종표관(鍾錶館)과 구룡벽 그리고 진보관(珍寶館)을 만납니다. 여기 있는 관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추가로 구입해야 합니다.
후정의 3대 궁(宮)
건청궁,교태전,곤령궁(乾淸宮,交泰殿,坤寧宮)을 3대 궁이라고 합니다.
순서대로 안내 설명문을 보면서 관람하면 되겠습니다
서육궁(西六宮)과 동육궁(東六宮)
저는 서육궁에서는 영수궁(永壽宮) 하나만 봤습니다. 영수궁은 건륭황제가 옹정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이곳에서 구룡벽이 가깝기에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서육궁을 지나면서 낮은 집들이 보이는데 이곳은 태감(太監, 환관)과 궁녀들의 거주지였습니다
동육궁 중에서 일부는 “청동기관“과 “정미(精美)공예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구룡벽은 이미 앞에서 별도로 포스팅을 했습니다
양심전(養心殿)은 건청궁의 서편에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적인 부분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둘러보십시오.
중국의 2000년 봉건군주제가 이 양심전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즉 1911년10월10일 손문의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 난 후 다음 해인 1912년2월12일 융유황태후(隆裕皇太后)가 강압에 못 이겨 선통제(宣統帝)의 퇴위를 선포한 곳입니다
전제진열관(專題陳列館, 주제별 특별전시관)
고궁 안에는 앞의 종표(鍾錶, 시계)나 진보관(珍寶館), 정미공예관 등의 전시관이 있으며,이 외에도 회화관(繪畫館),옥기관(玉器館),도자관(陶瓷館),역대 예술완구관, 청궁(淸宮)완구관, 고건축관람(古建築觀覽) 등등 고궁이 소장하고 있는 희소가치도 매우 놓은 것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산 역사,문화,미술 등의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어화원(御花園)
출구인 신무문이 가까운 곳에 황제의 휴식처이기도 한 어화원이 있습니다. 마지막 황제의 영화 속에서 부의가 어렸을 적에 놀던 곳이기도 합니다.
면적이 12,000m2인 이곳에는 나무들도 많고, 퇴수(堆秀)라느 가산(假山)도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어경정(御景亭)도 있습니다. 강설헌(絳雪軒)이나 연훈각(延暈閣) 등도 황제의 쉼터 였습니다
어화원 가운데에 흠안전(欽安殿)이 있는데 그 전 앞에 있는 나무는 수령 400년이 넘는 연리지(連理枝)입니다.
신무문(神武門)
자금성의 출구로 이용되는 북문은 이름이 신무문입니다. 우리나라 경복궁의 북문 이름도 신무문이니 어떤 연관이 있는지가 저는 궁금합니다 원 이름은 현무문(현무문)인데 청 강희제 때 중수를 하고나서 이름을 신무문으로 고쳤습니다. 이 성루(城樓) 위에 올라가면 고건축전람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무문을 나서면 해자(垓子)가 보이고 멀리는 각루(角樓)도 보입니다. 높은 자금성의 담장은 쳐다보는 이로 하여금 왜소해짐을 느끼게 합니다.
해자(垓子)의 다리를 건너서 보이는 맞은편은 북경 시내에서 가장 높다(해발 약 45m)는 경산공원(景山公園)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나게 됩니다.
최소한 두,세 시간 동안 자금성 안을 돌아보고 나오게 되는 출구인 북문 신무문(神武門)입니다
오후에 들어가면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어언 신무문에 이렇게 불이 켜질 때가 되어서야 나옵니다
각 전람실들은 오후 4시30분이면 문을 닫고 입장을 사절하는 현지 상황을 유의하면서 다니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