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국수의 역사

인류의 요리 역사 이야기(17) 베이징 요리 烤鴨(2)

콩지88 2018. 6. 17. 08:11


베이징 카오야(北京烤鴨 고압)는 북경오리구이로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대표적 베아징 요리의 하나 입니다

이 베이징 오리구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명한 취안쥐떠 오리구이 전문 레스트랑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화덕의 불 속에서 구어지고 있는 오리들 입니다



장작불이 활활 타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이징 오리구이가 더 맛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장작의 나무가 대추나무로 구우면서 대추나무의 향이 오리고기에 배어 있기 때문 입니다

향을 느낄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기분만이라도 대추나무 불로 오리를 구어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이야기 입니다


북경 주변과 하북성 일대는 대추나무가 많습니다. 아마도 오리 구이 할 때 사용한 나무가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추나무를 많이 사용한데서 유래했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그러나 일반 레스트랑에서는 대추나무 장작을 사용하여   재래식으로 오리를 굽기 보다는 편리한 전기 구이식을 대부분 이용하여 굽습니다.  재래식으로 구언 낸 것이나 전기구이로 구어 낸 것의 밋 차이는 일반인들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리가 다 구어지면 셰프가 손님 테이블 옆에 와서 오리의 껍질을 직접 칼로 벗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껍질 벗기기가 끝나면 남은 살과 뼈는 다시 주방으로 가져가서 국으로 끓여서 내 옵니다

이 과정을 모르면 맛 있는 오리 국은 먹어보지 못하고 그냥 나오기 쉽습니다 ~



오리고기 전문 레스트랑으로 유명한 베이징의 취안쥐더(全聚德 전취덕) 실내 홀 입니다

전국에 50개 정도의 체인 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베이징에만 20개 가까이 있습니다

저는 베이징에서 지낼 때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취안쥐더를 즐겨 찾곤 했습니다





고기를 즐기는 분은 이렇게 살을 껍질과 함깨 두툼하게 썰어 내놓는 것을 더 좋아할지 모르겠습니다

베이징 카오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우선은 껍질을 위주로 벗겨서 접시 위에 담아 놓은 것을 먼저 몇 점 집어 전병에 싸서 먹고 그리고 나중에 위 사진과 같이 살이 많이 붙은 고기를  습니다



베이징 카오야로 유명한 또 하나의 레스트랑은 리췬카오야띠엔(利群烤鴨店)과 삐엔이팡(便宜坊)이  있습니다

요즘 베이징의 젊은이들은 맛과 가격 그리고 서브하는 복무원들의 친절한 태도 등을 평가하여 새로운 카오야 전문점을 찾곤 합니다

요식업도 시대에 따라 움직이는 고객의 입 맛과 취향을 항상 살피지 않으면 새로이 등장하는 경쟁 업체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한 때 맛으로 서로 경쟁을 벌였던 리췬카오야 점은 옛 장소에서 일부러 찾아 오는 고객들을 시내와는 다소 외진 장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리의 속 살까지 골고루 익을 수 있도록 오리 몸 속에다가 사람이 공기를 입으로 불어 넣고 있습니다





숙달이 되면 한 마리의 오리에 공기 주입을 금새 채워 넣지만, 일반인은 공기 주입에 많은 힘이 들어갈 뿐 아니라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어지러움증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골고루 익히기 위해서는 옆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방향을 계속 바꿔 줍니다



이 동안 오리 몸통에서는 기름끼가 밖으로 빠져나와 장작 불 위에서 불꽃을 만들면서 이리저리 튀는것도 볼 수 있습니다



오리가 구어질 때 가끔 향유(香油)를 껍질에 발라주는 작업도 병행을 합니다

껍질이 노릇노릇해지면서 윤이 나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이 사진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한 마리를 불 가까이서 굽고 있습니다

대형 레스트랑에서 2,3 백 명의 고객들이 몰려 들 때 이렇게 한가로이 한 마리 씩 구울 수는 없겠습니다







중국인들은 오리의 머리 부분을 즐겨 먹기 때문에 오리 전체의 모양이 잘 유지되도록 조심해서 만집니다

오리의 혀(鴨舌 압설)과 오리 머리의 골은 카오야 맛의 극치 입니다 ㅋㅋㅋ




취안쥐떠와 함께 오리구이 전문점의 하나인 삐엔이팡(便宜坊 편의방)의 주방 안 입니다




티엔야(塡鴨 전압)은 오리가 생후 30일 안에 행하는데, 먹이를 사람이 강제로 오리에게 먹이는 것을 말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거위 간을 크게 맛 있게 만들기 위해서 거위에게 약울 바싹 올려서 간을 크게 부풀린 다음에  잡아 먹는다고 하지요?






강제로 오리에게 먹이를 먹이는 티엔야의 장면 입니다,  1947년에 미국의 LiIFE  Magazine 에 실린 것 입니다




오리를 굽기 전에 뱃 속에다 여러 가지의 재료와 국물도 채워 넣습니다.  속 살이 타지 않도록 하는 것 입니다





화로에 문을 단 것과 달지 않은 먼루(火+問爐 문로)와 꾸아루(挂爐 괘로)에 대한 차이 점의 설명 입니다






취안쥐떠와 삐엔이팡의 인기도 비교 입니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있을 때는 삐엔이팡이 더 인기가 많았으나, 모택동이 중국을 수립하고 나서는 취안쥐떠가 더 유명세를 탔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중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있습니다

1949년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모택동이 천안문에 올라 선포했습니다


모택동이 차에서 내려 천안문으로 향합니다




중국 인민들은 그동안 항일전쟁과 국민당과의 오랜  내전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우선은 다 같이 한 솥에 밥을 배불리 먹고 빈부격차가 없는 평등의 시대가 왔다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한솥에 밥을 먹는 것을 鐵碗飯(철밥통)으로 살아간다고도 합니다


모택동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주도하였으나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습니다

등소평이 뒤을 이어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내 걸고 개방 개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이 때 나온 말이 흑묘 백묘(黑猫 白猫)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이념에 관계없이 착한 고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빈부의 격차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하층 인민들의 생활도 모택동 시절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눈에 보이는 큰 부자들과의 점점 벌어지는 큰 격차로 마음 속에 불만이 쌓이고 있으며 심지어는 모택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랍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서 보이는 모택동의 초상화를 숭배하는 인민들과 모택동 시신을 보려고 긴 줄에 서 있다는 것이 예사 일은 아닌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