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의 죽음,머리와 몸이 따로따로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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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의 묘는 사천성의 랑중시(閬中古城)에 있는데, 2015년10월13일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지만, 저도 이것을 찾는데 꽤나 헤맸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장비의 죽음과 묘에 대한 내용의 요점만 올려드리며, 시간이 있는 분은 위 주소를 클릭하여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사천성 랑중고성(閬中古城)과 장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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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시는 사천성의 성도(省都)인 성도(成都 청뚜)와 36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낭중의 거리가 제가 본 자료와는 다소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작업중 때로는 오타가 날 수도 있으며, 거리의 기준을 어떻게 잡았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천성 광원시에서 150km, 성도와는 329km 떨어져 있는 랑중시에 있는 중국 4대 고성 중 하나이며 장비가 이곳에서 테수로 7년을 보낸 곳 입니다
장원방이란 패루 입니다
랑중고성에도 과거시험 장소인 공원(貢院)이 있습니다
이 공원(貢院) 과거 고시장은 중국에서 강소성 남경 부자묘에 있는 것이 가장 큽니다
일반 주택은 전통 양식인 사합원(四合院)식으로 지은 것이 많이 보입니다
장비가 도원에서 유비,관우와 의형제를 맺을 때 도축업에 종사했었기에 쇠고기로 만든 육포 앞에다 장비를 붙여서 "張飛牛肉(장비우육)"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마켓팅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육포는 약간 매콤한 맛이 구미를 당깁니다. 맥주 안주로도 잘 어울립니다
요즘 중국의 어느 도시든 문화와 역사를 엮어서 관광 상품화 하기에 경쟁적인 것 같습니다
장비의 거리 행진이 있습니다
장비가 불의의 사고로 죽자 유비는 막내였던 장비에게 환후(桓侯)라고 추서했습니다
관광객들이 장비로 분장한 이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당 안에는 장비의 좌상이 있고, 주변에 장비와 관련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장비의 눈은 튀어나올듯한 호랑이 눈을 가지고 있어서 보는 이에게 매우 위협적입니다
그러나 얼굴 보기와는 달리 그는 시사(詩詞)에도 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비의 묘 입니다
여기(랑중)에는 장비의 몸이 묻혀 있습니다
장비의 머리는 중경직할시의 운양현에 묻혀 있습니다
성도(成都)에 있는 유비의 릉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봉분이 있는 릉과는 달리 마치 야산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중국 릉의 특색인 것 같습니다
서안의 진시황릉도 하나의 큰 야산이었고 내몽고의 후허하오터에 있는 왕소군의 릉도 가서 보면 마치 동산같이 보입니다.
팁
중국 4대 고성이란
사천 랑중, 운남성 대리(大理 따리), 산서성 평요(平遙 핑야오), 안휘성 歙縣(흡현 시시엔 )을 말 합니다
랑중은 진(秦)나라 통일 후 기원 전 314년에 이미 랑중현으로 조성이 되어 있었으니 이 도시의 역사는 이미 2300년 정도나 됩니다.
사천성 광원시에서 150km, 성도와는 329km 떨어져 있는 랑중시에 있는 중국 4대 고성 중 보전상태가 아주 좋은 곳인데, 삼국지의 영웅의 한 사람인 장비가 이곳에서 태수로 7년을 보냈습니다.
형인 관우가 형주에서 오나라에 패하여 목슴을 읺었다는 소식을 접한 도원결의의 막내 장비는 속이 뒤집어 지는 슬픔을 참고 형주로 가서 유비군사와 합류 진격하여 형 관우의 원수를 갚을 출정 준비를 합니다. 장비는 부하들에게 돌아 간 형 관우를 위해서 흰 천으로 상복을 3일 내에 만들어 입고 출정하도록 하는데 명을 어기는 자는 참하겠다고 말하니 이 말을 들은 병졸들은 정말 흰 옷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장비가 출정 전날 밤 여늬 때처럼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잠이 든 사이에 범강(范疆)과 장달(張達) 두 부하 장수는 만약 명령대로 임무를 완수지 못했을 경우 참을 당할 일을 생각하자 결심을 하고 눈을 뜨고 잠을 자는 장비를 죽이고 목을 따서 싸들고 형주로 떠납니다.
그러나 길을 가는 도중에 오나라와 촉나라는 이미 화해를 한 상태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두 사람은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비의 목을 손권에게 가지고 가더라도 공을 인정받기는 고사하고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갈 판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가지고 있던 장비의 머리를 강에다가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주해버렸습니다
다행히 강변의 한 어부가 장비의 머리를 건져서 봉황산 아래 좋은 자리에다 묻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연이 있어서 장비의 묘는 두 개나 됩니다. 하나는 몸을 묻은 랑중의 묘이고 또 하나는 머리를 묻은 중경의 운양현에 있습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身在閬中, 頭在雲陽“ 즉 ”몸은 랑중에, 머리는 운양(雲陽)에 있네”라고 안타까움을 말하곤 합니다
현존하는 장환후사(張桓侯祠 (장비 사당)는 청대에 새로 만든 것입니다.
광원시(廣元市)와 150km 덜어져 있는 랑중고성은 고성구, 굼병구,등왕각,화광루,천북공원,파파사(巴巴寺 삐빠는 이슬람 어의 음역)와 대불사(古城區, 錦屛區,騰王閣,華光樓,川北貢院(과거시험 장, 남경 부자묘에 있는 공원이 가장 규모가 큼),巴巴寺와 大佛寺)등의 불거리가 있습니다
면적 5천 여 m2의 장비묘(廟)는 당나라 때 만들어 진 것이며, 유비가 장비를 환후(桓侯)로 추서 해 주었습니다.
랑중고성은 91개의 길이 종횡으로 교차되는데, 이 중에 20여 개의 길에 보이는 주택들은 당,송대의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으며 거주하는 민가에서 명,청 시대의 사합원(四合院) 식의 모습들을 살펴 보는 것도 이 랑중고성 여행의 숨겨 진 진수를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화광루(華光樓)
랑중시의 동대가(東大街) 남쪽 끝에 있는데, 랑원제일루(廊苑第一樓)라는 문루(門樓)의 높이가 30.9m나 됩니다 .이 길은 “송성(宋城)”이나 “명성(明城)”의 풍격을 보여주는 거리모습을 보여 줍니다.
옛 거리(老街 또는 古街)로 불려짐)의 고풍에 관심이 있다면 천천히 둘러보면서 이 랑중의 특산물인 식초와 장비우육(張飛牛肉 쇠고기로 만든 육포인데 매콤한 맛이 먹을 만 합니다) 그리고 각 종 두부 요리를 맛 보는 것도 이 곳 여행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