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북성

힘들어도 행복하다는 신농계의 뱃사공 이야기

콩지88 2017. 5. 19. 05:31





신농계(神農溪)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85세의 뱃사공 모습 입니다

오랜 뱃사공의 일로 근육이 잘 다져진 건장한 몸매는 험난한 삶의 세월을 잘 이겨낸 모습 입니다

 



평범한 오지의 신농계(神農溪 선농시) 입니다

보이는 구간은 그저 조용하고 한가로운 작은 강에 불과 합니다



신농가(神農架 선농지아)는 최근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이곳의 사공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관광객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 작은 배로 옮겨 태운 후 신농가까지 배를 젓기도 하고 물살이 빠르고 거칠며, 수심이 낮은 곳을 지날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배를 끌고 가야 합니다




오래 전에는 육로가 불편하여 이 작은 배로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데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물가의 절벽에 벌집처럼 구멍을 뜷어서 방공호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옛날 빵가와라는 산적이 훔쳐 온  물건을 감추어 두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틈이 있는 절벽 공간 사이에 무엇인가가 보입니다



공중에 올려 놓은 관(棺) 입니다. 현관(懸棺)이라고 부릅니다



관을 높이 매달아 놓을수록 후손들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가급적이면 더 높은 곳에 관을 올려 놓으려고 합니다  이런 풍습은 절벽에서 많이 보여지는데 중남부 지역에서 자주 보입니다

절벽 위에다가 관을 가져다 놓는 것을 묘기로 해서 시간을 정해서 공연처럼 연출하는 곳도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배를 타는 선착장에 도착 합니다



사공들이 많아지면서 사공들은 관광객을 태우는 번호를 순서대로 받아 배를 움직입니다

사공들은 대개 3일에 한 번 관광객을 태울 수 있다고 합니다




낮잠을 자서 에너지를 잘 충전 해 두겠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노익장의 할아버지도 관광객을 태울 자기 차례를 기다립니다



관광객을 태우고 오가는 여객선 입니다



여객선이 선착장에 도착하면 손님 맞을 차례가 된 사공들은  자기 손님 찾느라고 바빠집니다





작은 노젓는 배로 바꾸어 탄 관광객들 입니다

일반 쿠르즈 여행의 배들은 수심이 얕아서 이곳을 찾지 않습니다

제가 탔던 쿠르즈 선은 너무 커서 빠똥(巴東 파동)이란 곳에 반나절  정박하고 20여 명이 탈 수 있는 모터가 달린 배로 옮겨 타고 계곡 깊이 들어가서 구경 한 적이 있습니다



장강 삼협에는 이런 소삼협(小三峽)의 지류(支流)들이 많습니다




옛날엔 주로 물품 운송을 하는 것이 소삼협을 오가는 배들의 운항 주 목적이었습니다



수심이 낮거나 급하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경우는 사공들이 배에서 내려 밧줄을 어깨에 메고 끌고 가야 했습니다

                 


신농가의 오지마을 농민들은 농사를 짓고 살아 갑니다

황금 원숭이 같은 국가보호동물이나 1500종이 넘는 다양한 한약재로 쓰이는 식물의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오지 중의 오지인 곳에 사공 할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 산골 동네의 오지마을 같은 풍광 같기도 합니다



중국 깊은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옛 날 처럼 짚신을 신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인 사공이 사는 집에 다 왔습니다



지금은 큰 아들과 부인과 셋이서만 산다고 합니다

두 딸은 시집 갔고, 두 작은 아들은 도시로 나가서 산다고 했습니다



이런 공간은 간이 창고 겸 식당의 역할도 합니다

네모진 나무 탁자가 식탁이고, 나무 걸상이 의자 입니다



모택동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중국의 농촌 가정 집에는 모택동의 사진 걸린 집이 많습니다

모택동 시대에 와서 농촌이 잘 살게 되었다고 그들은 믿고 있으며, 마음 속으로 항상 감사드린다고 말을 합니다



과거 항일전쟁 시기나 국민당 정부군과 공산군의 내전 시기에 농민이나 노동자들은 정말 기아의 선상에서 헤매면서 비참하게 살았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모택동 시대에 와서 토지개혁을 하여 농사지을 땅이 생기고, 집도 생겼으니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 민초들은 배부른 것이 제일)이란 말이 있듯이 민초들은 누울 자리와 배만 부르면 딴 생각 하지를 않겠지요 ?

그러나 등소평 시대에 와서 黑猫白猫(흑묘백묘)의 자본주의식 경제 논리가 국가의 4개 부문 현대화개혁을 하면서  평준화 논리는 능력이 있는 자가 잘 살 수 있는 논리에 뒷 전으로 밀려나고, 오늘날의 화려한 급속한 경제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도시들에서는 마천루같은 화려한 고층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대형 마트나 백화점엔 고급 상품들이 넘쳐납니다. 거리엔 자전거는 거의 사라지고 자가용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어지럽게 눈 앞을 지나 갑니다

과거의 빈곤에서 벗어나서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잘 사는 小康(소강 샤오캉)시대에 들어섰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 입니다.


지금까지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서 내실이 약한 부문의 노출이 보이면서 문제점들도 하나 둘  들어 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겉모양 발전에 얼마큼의 점수를 주어야 할지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해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중국은 옛부터 (주로 나무로 만든) 침대생활을 해 왔습니다

중남부 지역에선 난방은 거의 하지 않고 솜 이불과 솜 누비 옷에 몸을 맡긴채로 ~




좋은 말의 글씨 한 폭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乞虧是福 (츠쿠이스푸 걸휴시복)

사람이 살아 가면서 다소 손해 좀 본다는 것도 하나의 복이다 ~

사람이 꼭 똑똑한체 살아가는 것 보다는 다소 바보스럽게 사는 것도 복인 것으로 생각하면 이 삶이 훨씬 더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부인이 팔을 다쳐서 노인네가 부인 먹을 거리를 혼자 만들고 있습니다



힘은 좀 들지만 노인네는 내가 할 일이기에 기꺼이 한다고 말을 합니다



먹기 편한 옥수수 죽을 쑤었습니다



오른 팔의 거동이 불편한 부인입니다




모처럼 이 오지까지 찾아 준 외국인이 그저 고맙기만 한 노인네 입니다

헤여짐이 못내 아쉬워서 눈 앞에서 손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냅니다


오지의 마을에 고요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조용히 사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왁자지껄 속에 사는 것이나 한 인생 살아가기는 다 같은 것 아닌가요?

문제는 행복을 내 스스로가 만들어가면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