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의 대리(大理) 이해(얼하이),대리석,숭성사 삼탑 ~2
이해공원(洱海公園)
대리시 하관 동북쪽으로 2km 떨어져 있는 이해공원은 1976년에 조성되었습니다.
해발 1974m 위의 담수호로서 남북 길이가 40.5km이며 동서 3~9km 이며, 수심은 15m이고 면적은 250km2에 달하는데 호수의 모양이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해(洱海 얼하이)란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호수 이름에 바다 해(海)자를 가진 운남성의 큰 호수로는 샹그릴라 부근의 납파해(拉帕海 라파하이) 호수도 있습니다
우선 운남성을 8박9일로 여행하던 중 2006년 7월30일 이해 뱃놀이를 가면서 선착장에서 담았던 사진 두 장을 아래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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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32분이었습니다.(사진 속의 시간은 중국보다 한 시간 빠른 한국시간임, 제가 올린 블로그 사진의 사간은 모두 한국시간임)
백족 아시마(아줌마)가 일찍 출근하고 있습니다. 비가 좀 내렸는지 땅이 젖어 있습니다.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아는 한 백족 아줌마는 바람막이 자켙을 미리 가지고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금새 10개 가까이나 팔았습니다.
이곳 날씨의 변화를 우습게 본 사람들은 춥다면서 하나씩 사 입어야 했습니다.
사실 중국 북경과 운남성은 시차가 최소 한시간 반 정도는 날것 같은데 통일이 란 명분이 좋아서 전국이 같은 시간대입니다. 신강위그르자치구는 북경과 거의 두 시간 차이가 나는데도 전국 시간통일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통일이란 두 글자에 너무 매몰되다보면 이런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배들 중에 우리가 타고 갈 유람선이 있습니다. 배들은 출항준비가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제가 탄 배는 이해 안의 작은 섬 소 보타도(小 普陀島), 남조풍정도(南詔風精島)는 가지 않았던 것이 좀 아쉬웠지만, 뱃놀이 다음 여정인 호도협을 거쳐 여강고성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해 유람이라도 이런 저런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남조풍정도가 보이는 동네 입니다
남조국(南詔國)의 왕들 별장지였던 남조풍정도의 전경 입니다
섬에 올라 조금 언덕을 오르면 운남성에서 가장 큰 관음보살상이 보입니다
중국에는 4대 불교 명산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절강성의 보타섬에 있는 보타산 입니다
보타산은 관음을 모신 산으로 유명한데, 여기에 이런 큰 관음상을 모셨기에 작은 보타 섬이란 이름을 가졌나 봅니다
정말 바다 같이 넓은 호수 입니다
주변에 사는 백족 어부들은 이 이해가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한 아지매가 그물을 수리하고 있습니다
그물을 치고 고기 잡이 하는 어선 입니다
이 백족 아저씨는 재래식의 가마우찌를 이용한 고기잡이 어부 입니다
가마우찌들이 고기잡이를 하도록 장대로 몰고 있습니다
가마우찌가 물고기 사냥을 했으면 이 아저씨는 긴 장대로 가마우찌를 들어 올려서 배 안으로 가져 옵니다
목에 줄을 매 놨기 때문에 큰 물고기는 삼키지 못하므로 어부가 손으로 꺼냅니다.
대신 큰 물고기를 잡은 보상으로 작은 물고기를 주곤 합니다
물고기 사냥을 끝내고 노를 저어 다른 장소로 갑니다
이런 멋진 사진은 보는 사람이야 즐겁지만,
매일 이 생활을 하는 어부와 그 부인은 그래도 항상 딴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입니다
시내에 있는 백족의 민속공연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광광객의 눈길을 끄는 대리석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큰 안락의자이지만 중국식 의자들처럼 이 의자 역시 권위의 상징으로 상당히 딱딱하게 만들어 졌으므로 안락이란 글자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대리석의 자연 그림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자연 무늬의 산수화 병풍 입니다
운령창봉(雲嶺蒼峰)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운해가 만든 재와 창산의 봉우리 들입니다
대리석 생산이 많아서 대리란 이름도 얻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곳곳에 대리석 가공 공장들이 있으며, 길거리에도 대리석들을 가득 쌓아 놓고 있습니다
시내에 있는 숭성사 입니다
원래의 숭성사는 오래 전에 소멸되었으나 몇 년 전에 복원을 하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잇습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삼탑을 구경하면서 숭성사 본 건물까지 땡볕에 200m 정도를 걸어가려면 양산 없이는 힘이 듭니다
물에 비춰지는 삼탑은 전문 사진사들이 즐겨 담습니다
오랜 세월과 지진에 피사의 사탑 보다도 더 기울어졌다는 작은 탑 입니다
팁
숭성사 삼탑(崇聖寺 三塔)
대리시의 옛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데 운남성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건축물이 삼탑이며 대리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높이 69.13m의 주탑은 823~859년에 만들어졌는데, 16층 사각의 밀첨식 전탑(密檐式 磚塔)이며, 층마다 감(龕)을 만들어 대리석으로 만든 불상을 모셔 놓았습니다.
제일 높은 주탑 보다 약간 뒤에는 남북으로 42.19m의 두 탑이 있는데 8각형의 밀첨식 전탑인데, 이 탑은 당나라 때에 48년에 걸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 탑을 만들 때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한 층을 만들면 탑 옆에다 진흙을 쌓아서 같은 높이 위에서 새 탑을 쌓고, 이런 식으로 탑을 완공하고는 흙을 모두 치웠다고 합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에 숭성사는 전란으로 파괴되어 없어지고 삼탑만이 비바람과 지진,홍수도 이겨내고 잘 버텨오던 중 1978~1980년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했다고 하며, 그 때 탑 안에서는 경전 외에도 많은 역사와 에술적 가치가 높은 680여 문물을 걷우었다고 합니다
한 편 작은 탑의 경우엔 매 층 마다 탑의 중앙 공간에다 십자형의 나무가 탑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발견 되었는데 즉 십자목의 가운데를 주축 기둥으로 삼아서 탑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기능을 가진 것을 발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