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성 대리를 소개한 다큐멘터리(숭성사 삼탑,대리석) 5~2
골목 안에다가 텃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백족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 입니다
창산은 여름에도 산의 정상에 쌓인 눈이 잘 녹지않기도 합니다
창산의 물이 지하수로 이 마을 우물까지 왔습니다
이 우물 물은 음료는 물론 채소 씻기와 빨래하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 됩니다
골목 안은 노인네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이 늘 만나는 곳이라고 합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꽃을 만들기도 하고 뜨게질도 합니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남편은 애인(愛人 아이런)이라고 부르며, 남편 외에 따로 사귀는 경우는 대개 남붕우,여붕우(男朋友 女朋友 난펑여우, 뉘펑여우) 즉 남자 친구,여자친구라고 부릅니다
좀 더 친숙한 사이는 정인(情人 칭런) 즉 우리 식으로 부른다면 애인 또는 정부(情婦)가 되겠습니다
숭성사 삼탑(崇聖寺 三塔)
대리시의 옛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1km 거리에 있는데 운남성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건축물이 삼탑이며 대리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높이 69.13m의 주탑은 823~859년에 만들어졌는데, 16층 사각의 밀첨식 전탑(密檐式 磚塔)이며, 층마다 감(龕)을 만들어 대리석으로 만든 불상을 모셔 놓았습니다.
제일 높은 주탑 보다 약간 뒤에는 남북으로 42.19m의 두 탑이 있는데 8각형의 밀첨식 전탑인데, 이 탑은 당나라 때에 48년에 걸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 탑을 만들 때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한 층을 만들면 탑 옆에다 진흙을 쌓아서 탑을 쌓고, 이런 식으로 탑을 완공하고는 흙을 모두 치웠다고 합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에 숭성사는 전란으로 파괴되어 없어지고 삼탑만이 비바람과 지진,홍수도 이겨내고 잘 버텨오던 중 1978~1980년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했다고 하며, 그 때 탑 안에서는 경전 외에도 많은 역사와 에술적 가치가 높은 680여 문물을 걷우었다고 합니다
한 편 작은 탑의 경우엔 매 층 마다 탑의 중앙 공간을 십자형의 나무가 발견 되었는데 십자목의 가운데를 주축 기둥으로 삼아서 탑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기능을 가진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대만에서 대리석을 자르는 광경을 구경 한 적이 있는데, 보통 톱처럼 대리석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모래와 물을 가지고 톱을 앞 뒤로 이동시키면서 마찰시켜서 장시간에 걸쳐서 자릅니다
3~4일은 기본이고 일주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신기할 정도로 정교하게 자른 큰 대리석들 입니다
대리석에 새겨진 자연 무늬들은 산수화 같기도 하고 마치 한 폭의 미술 작품같기도 합니다
제목을 문(吻 원)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뜻은 영어의 Kiss 즉 입맞춤 입니다
폭이 아주 좁은 골목 길도 있습니다
벽에다가 새 또는 꽃을 그려 놓기도 합니다
여유가 있는 백족들은 마당에 조벽(照壁)을 만들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도 안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짚이 대문 밖에 쌓여 있습니다
발효시켜서 마치 털이 달린 것 같은 두부 만드는 집을 찾은 것 입니다
마치 메주를 띄우듯이 두부를 곰팡이로 띄우는 것 입니다
두부 만들고 난 비지 입니다
두부 만들기 이전의 두유 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보통은 떠우지앙(豆醬 두장)이라고 부릅니다
아침 식사 때 찹쌀로 기름에 튀겨서 만든 여우티아오(油條)와 함께 먹기도 합니다
일주일 된 발효시킨 두부 입니다
털로 덮인 두부 즉 마오또우푸(毛豆腐) 입니다
다 만들어진 모두부 입니다
하루에 150kg의 모두부를 만들지만 직접 팔러 나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집의 모두부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서 멀리서에서도 일부러 사러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북경,상해 등의 대도시에선 노점상에서 식품을 팔 경우라도 위생 모자와 흰 상의를 입도록 하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은 위생관념이 좀 쳐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