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루에 입장하려면 표를 사야하며, 입장시 화재 인화물질을 소지하였는지의 보안검색을 받습니다
ㅈ저는 종루의 종이 달려 있는 천정까지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고루(아래 사진)도 높지만 종루도 높습니다
종루(鐘樓 종러우)
종루의 종은 도심의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 종루는 처음 명 영락제 때인 1420년에 만들었지만 전화(戰火)로 소실되었고 청대의 건륭제 때인 1747년에 소리의 울림과 음향을 고려하여 벽돌로 지었습니다
명대에 만든 철종(鐵鍾)은 소리가 크지도 않아서 동종(銅鍾)을 새로 만들어 지금의 종루에 올려 놓았는데 높이 3.5m에 구경이 1.5m 그리고 무게가 63톤에 달하는 것을 어떻게 종루에 옮겨 놓았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 침략기에도 이 63톤의 큰 종을 옮겨다가 대포와 탄알을 만들려고 했지만 옮기지 못하여 포기했습니다
종루 앞에는 건륭 12년(1747년)에 만든 어제비(御製碑)라는 기념비가 있는데 종루의 건축과 수리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안 검사소 입니다
종루 밖에는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가는 삼륜차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삼륜차는 부근의 후통을 구경시켜 줍니다 서양 관광객들은 이 삼륜차를 꼭 타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후통 둘러보는 삼륜차는 티켓을 미리 구입한 후에 삼륜차에 올라 유람을 시작 합니다
삼륜차 탑승 매표소 옆에는 광예재(廣藝齋)라는 도자기 갤러리가 있습후통니다
동종에 담긴 전설
이 종루에 있는 동종에는 우리나라 에밀레종과 유사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을 녹여서 끓는 동액을 형틀에 부울 때 수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였는데, 어느 날 장인의 딸이 끓는 구리 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대 신발 한 짝이 밖에 남겨졌는데, 나중에 동종이 완성되어 종을 치자 종에서는 시에야오~(혜요(鞋要) 내 신발 주세요 ~)라고 하는 소리가 나곤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후통의 벽쪽에 주차한 차들이 꽉 차 있는데 그 사이를 삼륜차들이 잘도 빠져 나갑니다
빈관(賓館)은 여관 입니다 사진 속의 宾 글자는 발음이 같은 賓의 간체자 입니다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딱지치기하면서 놀고 있고,
어른들은 테이블에 마작 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종루 야채시장 입구 입니다
삼륜차는 이런 좁은 골목 길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저는 걸어다니기 때문에 북경의 좁은 골목길도 들여다 봅니다
북경은 산동성, 산서성과 가까워서인지 작은 음식점은 로채(魯菜 산동음식)과 진채(晉菜 산서 음식) 집 간판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후통은 걸어가면서 구경해야 북경의 진면목을 보게 됩니다
이런 좁은 골목길은 잘못 들어서면 막다른 길이 되기도 합니다 ~
양창제(楊昌濟)의 옛 집인데, 모택동의 스승이었습니다
북경의 한방 종합의원 소개 입니다
'경성명의관" 전경 입니다
'급진(急診)"은 응급실(Emergency) 입니다
挂號廳(괘호청 꽈하오팅)은 진료 접수 하는 곳 입니다. 廳 대신에 處를 쓰기도 합니다
수의(壽衣) 간판도 보입니다
걸어놓은 새 장 안에는 앵무새처럼 말을 잘 하는 검은 구관조(九官鳥)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청진(靑眞)이란 간판을 단 집은 회족이 운영하는 식당 입니다
지안문외대가(地安門外大街) 큰 길로 나왔습니다
종루 전체를 열심히 담으려고 애쓰고 있는 아가씨 입니다
점심시간이어서 李先生 우육면의 간판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우육면의 체인 점이었는데 젊은이들이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하고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루와 종루 그리고 주변의 후통은 10월3일 오전에 담은 것 입니다
북경의 후통은 이름이 달린 것은 3,600개 정도이고 이름이 없는 단순 골목길은 마치 황소의 털 숫자만큼이나 많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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